『망태 할아버지가 온다』/ 박연철 글, 그림 / 시공주니어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아이와 함께 생활하다보면 싫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다. ‘이것 좀 먹어봐’ ‘싫어!’, ‘숙제부터 해.’ ‘싫어!’, ‘문제집 좀 풀어라’ ‘싫어!’, ‘피아노 연습 좀 하지’ ‘싫어!’, ‘이것부터 하고 놀아야지’ ‘싫어!’ 이럴 때마다 싫다는 말은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하는 말마다 싫다고 대답하니 답답하겠지만 아이 입장에서 보면 싫은 것만 하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게다가 싫다는 대답이 매번 먹히질 않고 무시당하거나 다시 부모에게 설득 당했다면 ‘싫어!’라는 말은 힘을 잃게 된다. ‘싫어서 어쩔 건데 싫어도 참아!’ 하면 그만이다.

학교라는 말을 떠올릴 때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서 생각날 정도로 학교폭력이 사회 문제로 얘기되고 있다. 폭력이란 단순히 때리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방이 싫어하는 걸 계속하면 폭력이 된다. 그런데 ‘싫어!’라는 말이 힘을 잃었으니 폭력이 일상화 될 수밖에 없다. 학교폭력이 사건화 되었을 때 학생들은 장난이었다거나 상대가 그렇게 싫어하고 힘들어 하는 줄 몰랐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싫어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 곧 폭력이라는 감수성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감수성이 일상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가장 쉽게 무너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아이들의 ‘싫어!’라는 말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의 침묵 속에 담긴 ‘싫어!’의 의미를 무시하지 말자. 어른이라는 이유로, 부모라는 이유로, 교사라는 이유로, 입혀주고 용돈을 준다는 이유로 혹은 ‘너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어린이를 위협하거나 무시하거나 우위에 서지 말고 어린이를 진지하게 대할 때 가능하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는 야단맞고 혼나는 아이의 일상을 그린 그림책이다. 반전 있는 결말로 아이들에게는 통쾌함을 주고 많은 엄마들을 반성하게 하지만, 어른들의 협박과 폭력을 아이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끔찍한 책이기도 하다.

말 안 듣고 말대꾸하고 ‘엄마도 ~ 하잖아’ 하며 따지는 아이와 눈을 치켜뜨고 목소리 높여 아이를 혼내는 엄마가 나온다. 아이보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눈을 치켜뜨고 화를 내는 엄마의 모습에 눈이 간다. 나도 야단칠 때 저런 모습일까 싶다. 아무리 목소리를 낮춰도 혼나는 아이 눈에는 엄마가 저렇게 보일 것 같아 공감을 하고 만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고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은데 왜 망태 할아버지까지 끌어와서 아이를 겁주는 걸까? ‘망태할아버지는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잡아다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만들어 돌려보낸’다. 등에 동그라미 도장을 찍어서 말이다. 말 안 듣는 아이를 잡아다 혼을 내 주고, 우는 아이는 입을 꿰매 버리고 떼쓰는 아이는 새장 속에 가둬 버리고 밤늦도록 안 자는 아이는 올빼미로 만들어 버린단다.

 
망태 할아버지가 아니더라도 공부 안하면 갖고 싶은 것도 못 갖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게 된다며 애꿎은 청소부나 노숙자를 들먹이며 아이들을 겁주기도 한다. 우리도 어릴 때 부모가 하는 그런 말들이 두려웠는데 왜 아이에게 반복하고 있을까? 부모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상황이 너무나 익숙하고 절실하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겁주면서까지 절실하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부모들은 아이가 거짓말하지 않는 정직하고 착한 아이가 되길 바란다. 이 마음 때문에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의 이야기를 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고 얼른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지 않는 아이를 다그치게 된다. 또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학교를 가고 정해진 시간에 공부를 하는 말 잘 듣는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이 마음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할 일을 안 하면 불만스럽고 아이를 나무라게 된다. 있는 그대로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아이가 우리 눈앞에 있다. 그러니 늘 아이가 그렇게 하는지 못 하는지 평가하고 닦달하게 된다.

그림책에서 “어서 들어가 자!”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엄마도 안 자잖아.”로 되받아친다. ‘친구 때리는 건 나빠.’라고 하니까 ‘다른 애들도 걔 때렸어요.’ 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엄마가 잠을 자라고 하면 자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면 된다. 그런데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엄마의 지시는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아이는 알고 있다. 이유에 상관없이 엄마는 일찍 자는 건 좋은 일이고 늦게 자는 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설명 대신 엄마를 끌어들인다. 게다가 엄마들이 망태 할아버지가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잡아다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만들어 돌려보내길 바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아이도 망태 할아버지가 자기를 못 살게 구는 엄마를 잡아다 얌전하고 말 잘 듣는 착한 엄마로 만들어 주길 바란다. 엄마의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고스란히 배우는 아이의 모습에 섬뜩하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더니 꼭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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