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네 국밥’이‘남촌집’이 된 사연

“좋소! 닭 잡으러 왔다가 문이 열려있어 들어와 봤는디 옛날 이야그도 하고 덕분에 고맙소!”

형제들과 고향계곡에 왔다가 백숙 재료 닭을 사러온 김에 들렀단다. 이미 형제들과 술과 고기를 많이 먹었는데도 옛 추억 때문에 막걸리 한 잔 들이키러 들어온 것이란다.

“한참 동생이여 한참. 어렸을 땐 애기였제. 근디 벌써 늙어갖고 손주를 본다헝께 할 말이 없구만.”

한참 애기였던 친구 사촌동생이 어머니가 하시던 국밥집을 물려받아 오일에 한 번씩 장날이면 문을 연다. 기억 속 그 자리에서 유년시절의 추억을 함께 한 동생이 있고, 늘 그곳에서 머리고기 삶는 연기를 여전히 피워주는 박샌떡 딸이 있어 장날이면 무담시 들어와 보게 되는 곳. 끼니때가 되면 국밥 한 그릇, 배가 부르면 탁주 한 사발. 짧은 커트머리에 뒤태는 가시나인지 머시마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박샌떡 딸인디 엄니가 하던 그대로 국물 맛을 낼 줄 안다.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자라, 여기 남자 만나서, 여기 살고 있는 주암 광천시장 남촌집 박옥남(53세)씨.

▲ 친정엄마 뒤를 이어 42년째 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옥남씨. 광천장에 남아있는 유일한 국밥집이다.
주암댐을 바로 곁에 두고 하천둑을 뒤로 하여 자리잡은 주암 광천장. 주암의 면적을 짐작케 할 만큼 오일장이 세 개나 있었으나 주암댐이 생기면서 하나는 수몰이 되고, 인근에 있던 창촌장마저 끝을 맺고 이곳 광천장만 남았다. 이름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시장 규모가 꽤 넓다. 아니,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야할 좌판이 꼭꼭 문이 잠긴 채 텅빈 장터여서 꽤 넓어보였는지도 모른다. 어물전 좌판이 서넛, 신발좌판, 의류좌판, 철물좌판, 그리고 저 멀리 닭장이 보인다. 둘러보는 발걸음이 무겁고 날 바라보는 눈빛이 간절하다.

“어렸을 때는 굉장히 컸는디 시방은 손바닥만 허요. 요건 장도 아니제. 어찌다가 복숭아라도 사묵을라믄 보리를 갖다주고 바꿔묵고 했어. 그때는 돈이 별로 없응께 물물교환이 많았제.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저그 자장면집 냄새네. 어려서 장에 오면 자장면이 어찌나 묵고 잡든지… 시방은 시내버스 타고 다 순천장으로 가불고, 물건도 여그보다 더 싸부러, 가차운 여그보다.”

교통의 발달은 시골 재래시장의 목숨을 위협해 왔다. 버스 한 번 타면 더 싸고 더 다양한 장을 볼 수 있는 도심의 장을 찾게 했다.
 

주암에 하나 남은 오일장, 하나 남은 국밥집

▲ 박옥남씨가 운영하고 있는‘윤하네국밥’. 얼마전 한 방송사에서 세트장으로 활용하며‘남촌집’이 되었다.
“주암면이 엄청 큰디 골짝에 사람들은 장날만 기다렸어. 국밥 한 그릇 묵을라고. 옛날에는 국밥집이 돈 많이 벌었제.”

장을 찾는 사람들의 허기를 채우고 시름을 달래던 곳. 친정어머니가 35년 장사를 하고 70세에 딸 박옥남씨가 물려받아 7년째 순대국밥을 팔고 있는 ‘남촌집’. 이 집 간판이 이상했다. 순천드라마세트장에 와있는 느낌. ‘우와~ 옛날 그대로 모습이네!’란 생각이 들게 하는 간판. 그 옛스런 느낌에 이끌려 국밥 한 그릇 먹어야겠다 싶어서 들어갔다.

▲ 손수 만든 순대가 듬뿍 담긴 남촌집 국밥
“원래는 저 간판이 아니고 ‘윤하네국밥’인디 얼마 전에 어디 방송사에서 드라마를 찍을란디 이곳이 옛날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세트장으로 앞을 고쳤어. 입구만 고쳤는디 다시 원상복구할라다가 손님들이 좋다고해서 그대로 놔둔거여.”

딸 이름으로 간판을 올렸다는 이곳이 이제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이름도 바뀌게 된 것이다. 간판 느낌으로는 한복은 아니더라도 흰앞치마에 흰머리수건을 두르고 있을 것 같았던 주인아짐은 건장한 남정네 풍모를 가지고 있었다.

몸놀림에 한 치의 나른함도 묻어있지 않은 박옥남 아짐. 장날이면 새벽 2시에 나와서 손수 순대를 만들고, 머리고기 삶고, 내장 손질하고, 밥하고 장사준비를 한다. 돈으로 사는 건 소금하고 새우젓뿐, 쌀이고 나물이고 당신이 직접 다 지어서 상에 올려 놓는다.

“집에 가면 파김치가 된께 남편이 장사 그만하라는디 배운 도둑질이라고 힘들믄 손 놓고 싶다가도 유일하게 나만 남은 국밥집인지라 안할 수가 없어. 처음 장사할 땐 국밥이 3천원이었어. 그때는 60만원도 벌고 했는디 지금은 잘해야 30만원 정도고 20만원은 팔아야 나 일당이라도 챙겨.”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 생각에 안할 수 없어

친정어머니가 물려주겠다고 할 때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왜 안그랬겠는가. 눈에 보일 정도로 오일장 사람은 줄어들고 하루 장사지만 준비하고 정리하고가 꼬박 3일을 매달리게 된다는데.

“나가 문 닫아블믄 여기 재래시장에는 인자 국밥집이 암도 없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는디, 그런 사람들 생각하믄 안할 수가 없당께.”

▲ 주암면에서 하나 남아 있는 오일장 광천장터
광천장을 뒤로 하고 있는 거대한 주암댐은 물의 흐름을 막았지만 세월의 흐름은 막지 못했다. 세월은 이곳 장터의 잡풀들만 자라게 하고 있다. 물은 흘러야 썩지 않는 법인데, 세상도 세월의 흐름에 맞춰 변화되어야 도태되지 않는 것일까? 변화를 꾀한들 이곳 잡풀들의 뿌리내림을 막을 수 있을까?

“한쪽에서는 고치자, 한쪽에서는 그대로 두자고 해. 근디 순천도 보믄 아랫장, 웃장을 좋게 고치고 했지만 오히려 다 노점으로 나가불고 안되잖애. 그거 다 우리 세금으로 지은 거 아니여. 여기가 낙후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런 옛 맛이 남아 있응께 드라마도 찍으러 오지 않느냐 말이여. 나는 없애지 말고 보수만 조금해서 이대로 보존했으면 해. 아! 좋잖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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