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훈
예술공간 돈키호테
기획연구팀장
순천 원도심에 동천이 흐른다. 북서면에서 발원해 남쪽 바다로 흘러가는데, 순천만의 생태계를 만든 것이 지금의 동천이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 땅에 사람이 모여 살기 이전에도, 동천은 유유히 흘렀을 것이 분명하다. 자연환경에 순응하면서도 부단히 그것으로부터 편리와 영리를 추구하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놀랍게 진화한 생명체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자연스러움을 거부하거나 편리와 영리의 추구를 극대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문명(civilization)’이라는 말은 인간의 도시화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 또한 이 말은 식민지 건설에서도 긴요하게 사용되었다. 역설적으로 인간의 도시의 개발과 발전은 상대적으로 자연환경의 황폐화와 파괴를 야기 시킨다.

7,80년대 급격한 도시화를 거치면서 도심을 관통했던 옥천과 함께 동천이 심하게 오염되었다. 그 오염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던지 90년대 중반까지도 ‘똥천’이라 불렀다. 동천이 지금처럼 물이 맑아 걷기 좋은 친수공간으로 바뀐 것이 불과 20년 정도이다. 동천이 이렇게 바뀐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도시의 개발과 성장이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무엇보다 자연환경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환경을 파괴하는 요인에 대한 규제가 큰 역할을 했다.

환경의 개념에는 경관(景觀)이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풍경을 본다’라는 행위가 없이 우리는 환경을 인식할 수 없다. 자연경관은 물론 도시경관까지 우리는 장님이 아닌 이상 이 ‘풍경을 본다’는 행위를 멈출 수 없다. 그래서 인간은 여러 감각 중 ‘시각’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그것에 지배받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성질로 인해 ‘환경이 경관’이라는 것은 인간의 성장과 문화에 매우 중요하게 상호작용을 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는 아이와 촌락 마을에서 자라는 아이의 감수성이 다르다. 때문에 경관을 만드는 일,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드는 일은 특히나 신중해야 하고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 작업이다. 하물며 그나마 보기 좋은 경관을 망치는 일은 더욱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7월 15일 자 광장신문 <동천 보행다리 설치, 돌고 돌아 스윙교로>란 기사에 실린 동천 보행다리 조감도를 보고 문득 두 개의 동천 경관을 떠 올렸다. 하나는 장대공원에 설치된 ‘사자상 분수대’이고, 다른 하나는 순천만 정원에 놓여있는 ‘꿈의 다리’다. 둘 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만들었음에도 과연 동천의 경관을 살리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게 하는 구조물이다. 특히 장대공원 사자상 분수대는 동천은 물론 죽도봉의 경관까지 망치고 있다. 현재의 이질적 모습을 순천읍성과 연결된 장대(將臺)라는 장소의 역사성으로 되돌리는 것이 낫다. 꿈의 다리의 경우, 다리를 예술작품으로 장식하였으나 동서 두 개의 정원공간을 잇는 가교로써는 미적으로나 상징적으로 빈약하다.

보행교 설치 계획은 순천시가 도시재생의 랜드마크의 하나로 원도심과 장대공원을 연결하는 다리로 야심차게 구상한 것으로 알고 있다. 처음 어떤 다리를 꿈꿨는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사업비가 축소되고 기능이 달라졌다고 해도 조감도로 드러난 다리를 보면 편리는 있겠으나 동천의 경관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생기질 않는다. 현재의 보행교 설치안은 도시재생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줄기차게 추진해 온 순천시민의 동천 가꾸기의 연장에서 재고되어야 한다. 좀 더 동천 경관에 대한 세심한 고민을 기울려 줄 것을 부탁한다. 대개의 야심찬 프로젝트가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는 것을 몇 번 보고 있자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왜 용은 뱀처럼 쪼그라들까?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