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일이와 수일이』/ 김우경 글, 권사우 그림 / 우리교육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어린이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삶을 만들어 가는 존재다. 어린이책은 영혼의 성장을 돕는 하나의 매개체로서 어린이책 작가의 올바른 가치관과 소명의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작가가 어린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에 따라 작품에 그려지는 삶의 모습이 다르게 표현되고, 아이들에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는 작가들에게 아이들과의 접속을 위한 유혹적인 형식인 것 같다. 함께 살고 싶은 세상,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현실이 아닌 또다른 세계의 모습으로 형상화됨으로써 아이들의 말랑말랑한 무의식 속으로 스며든다. 그러나, 동식물의 입을 통해 옳고 그름을 가리고 행동 강령을 제시하는 우화가 그렇듯이 판타지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현실 세계의 법칙을 깨뜨리고 넘어서지 못할 때, 그 가치가 아무리 고귀하고 소중한 것이라도 문학으로서의 위로와 힘이 아니라 어른들의 잔소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임 속 세상에서는 ‘수일이’가 주인이어서 모든 일을 수일이가 정한다. 그러나 컴퓨터 바깥세상은 수일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다. 수일이는 방학동안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학원만 왔다 갔다 하다가 자신을 하나 더 만들어 대신 학원에 보내고 마음껏 놀고 싶어 한다. 컴퓨터 오락도 좀 마음 놓고 하고 밖에 나가서 아이들하고 공도 차며 실컷 놀고 싶어 한다. 수일이의 이런 마음을 덕실이가 <손톱 먹은 쥐> 이야기를 하며 꾀어서 가짜 수일이를 만들도록 부추긴다.

누구나 한 번쯤 수일이같은 생각을 해 봤을 거다. 아이들이 학원 대신 마음껏 놀고 싶은 소망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학원을 다니느라 방학조차 놀지 못한다면 학원을 다녀야 하는 현실이 문제이지 놀고 싶은 마음이나 가짜 수일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잘못된 소망은 아니다. 그런데 가짜 수일이를 만들고 겨우 삼일 만에 수일이는 가짜 수일이를 만든 걸 후회하고 가짜 수일이를 없애는 것이 이야기의 중심 내용이다.

판타지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판타지 세계를 통해 주인공이 어려움을 이기고 소망을 이루거나 이룰 수 있는 힘을 키운다. 그러나 수일이와 가짜 수일이의 갈등은 마치 수일이가 가짜 수일이를 소망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게 한다. 가짜 수일이는 학원과 학교를 반복하는 생활이 좋다면서 수일이를 쫓아낸다. 이런 일상을 못 견디고 피하려고 한 수일이가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가짜 수일이는 왜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그 생활을 하고 싶어 할까?

한편 가짜 수일이를 학원에 보내고 수일이는 친구들과 공을 차며 논다. 그런데 노는 모습이 아주 즐겁고 행복하게 보이질 않는다. 티격태격 다투어도 친구랑 노는 건 즐겁다. 그런데 골키퍼를 서로 안하려고 가위바위보를 하는 장면부터 한 골 먹히고 전반전을 끝내는 장면까지 신나고 즐겁다기보다 뭔가 아쉽다. 게다가 놀다가 학원을 가야하는 친구들이 아쉬워하는 게 아니라 남은 수일이가 애처로워 보인다. 학원 안가고 마음껏 놀고 싶어 한 수일이에게 노는 게 생각만큼 신나는 일만은 아니라고 하는 듯하다.

수일이가 가짜 수일이를 만들 만큼 힘든 현실은 엄마하고 말이 통하지 않아서다. 덕실이가 말을 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학원가기 싫어서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말한다. 가짜 수일이 이야기를 해도 그런다고 학원을 쉬게 해주진 않는다. 엄마 때문에 수일이는 힘들어 하지만 엄마는 변하지 않는다. 가짜 수일이의 등장은 엄마를 변화시켜 수일이의 삶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전혀 없다. 오히려 여름 휴가도 못가고 땀흘리며 일해야 하는 아버지의 고단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님을 원망하는 수일이의 모습과는 반대로, 어려운 가정 형편을 생각하며 축구 선수가 되려는 꿈을 바꾸는 도형이 이야기를 배치시킴으로서 부모의 고단한 삶에 대한 철없는 행동을 반성하게 한다.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수일이는 이제 더이상 가짜 수일이가 필요 없다. 그러나 부모님과 여름 휴가를 다녀 온 이후, 더이상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달라진 가짜 수일이의 태도는 진짜 수일이를 불안하게 만든다. 거기에 더해 아기를 가진 엄마는 수일이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아기를 가진 엄마가 잘못될까봐 수일이가 전전긍긍하는 상황은 수일이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엄마의 문제가 아니라, 수일이의 잘못이었음을 강조한다. 엄마에게 당당히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해결해 나가기는커녕 엄마에게 더 잘하고 엄마에게 맞춰주어야 하는 상황이다. 아기를 가진 엄마 앞에서 수일이가 학원을 열심히 다니고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가짜 수일이가 진짜 수일이에게 맞설수록 수일이가 가짜 수일이를 만들어서 제 멋대로 하려고 했던 소망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가를 말해주는 것 같다.

『수일이와 수일이』는 얼핏 방학에도 학원을 가야하는 아이들의 현실이 문제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짜 수일이를 바라는 아이들의 마음이 잘못이라고 나무라고 있다. 가짜 수일이와의 갈등은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순식간에 읽게 만들었지만 수일이의 원래 문제가 무엇인지 잊어버리게 한다. 가짜 수일이를 바라는 아이들의 마음이 문제일 수 없다. 가짜 수일이를 바랄만큼 힘든 아이들의 현실이 문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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