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131호 좌담 (강남훈, 곽노완, 김종철)

녹색평론은 그동안 중요한 사회적인 이슈 즉 지역화폐, 탈핵, 협동조합 등을 거론하여 우리 사회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곤 했습니다. 최근호는 자본주의의 대안적인 성격으로‘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흥미진진하고 참신한 이슈이며 널리 국민적인 여론이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개합니다.

 
무언가 탈출구는 없을까?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고, IMF이후 한국 경제가 무너지고 난후, 소위 이태백, 88만원세대, 삼포세대가 일상화되었다.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안보이고, 비정규직이 일반화되고, 진보진영도 희망적인 미래상을 못찾고 헤매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기본소득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극심한 시장경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매우 유력한 탈출구라는 주장이 있다. 기본소득이란 GDP중 일부를 성별. 지역. 빈부 등 모든 것에 상관없이 국민 모두에게 일정한 액수 지급하는 것이다. 정말 환상적인 발상이다!
다음에서 관련된 몇 가지 측면을 알아보자.

첫째, 기본소득이 거론되는 역사적 배경과 사례는 어떠한 것이 있는가?

사실 기본소득이란 개념은 우리에게 낯설고 생경하다. 그러나 수십년 전부터 이미 거론되어 왔고, 세계 몇몇 나라에서 실험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먼저, 미국에서는 1972년 대선에서 닉슨에 맞선 맥거번 후보가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내세웠으나 안타깝게 패배했다. 그 이전 1969년에 닉슨은 마이너스 소득세 형태의 기본소득 안을 구상하여, 2회나 하원에서 통과되었으나, 상원에서 부결되어 결국 무산되어 버린 사례가 있다.

다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70명 중에 10명이 기본소득을 찬성했다.

다음, 유명한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르틴 루터 킹은 죽기 직전에 ‘빈자들의 행진 (poor people's march)운동을 계획했는데, 이것은 흑. 백을 포함해서 모든 미국인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라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알래스카는 연간 3000달러 정도의 기본소득을 주민 모두에게 지급하고 있다. 석유라는 자연의 선물을 골고루 나누는 것이 합당하다는 합의가 이루어진 때문이다.

세계적인 사례를 보자면, 그리스 사리자, 이태리 오성운동그룹, 독일 해적당 등의 정당은 기본소득을 중요 정책으로 내세워서 상당한 의원수를 확보하면서 세를 확대하고 있다.

둘째, 기본소득은 어떤 근거가 있는가?

먼저, 기본소득에는 다음과 같은 철학적 전제가 있다.

지구와 생태계는 하늘이 만인에게 공통적으로 준 선물이며 이것을 소수가 독점할 수는 없다.

산, 들판, 강 등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면 문화적, 사회적 재화는 어떤가?

이들도 소수가 독점할 것이 아니고 모두가 함께 공유할 대상이다. 자기 노력의 결과가 아닌 우리 모두의 선물은 인류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갖는 것이 당연하다. 모든 인간에게 천부적인 인권이 있듯이, 인간이라면 자연의 선물과 사회. 문화적 재화에 대한 권리가 있다.

다음은 시대적 요청이 배경에 깔려있다.

이제는 탈성장시대가 되었고 안정된 일자리 창출이 점점 어렵게 되었다.

산업사회를 넘어 정보사회가 되었고, 많은 분야가 자동화, 전산화되면서 일자리가 급감하고 있다.

‘취업계수’라는 개념이 있는데, 10억원어치 물건 생산에 몇 명의 사람이 필요한가다.

1980년 우리나라 제조업 취업계수는 10.31이었는데, 2010년에는 1.27로 줄었다.

노동의 종말이 오고 있는 시대에 다수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짓말에 가깝다.

셋째, 모두에게 기본소득이 과연 타당한가?

먼저, 부자들에게도 기본소득을 똑같이 주는 것이 타당한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한 때 선별복지냐 보편복지냐도 문제가 되었었다. 그러나 일정 소득수준 이하 대상을 선별해서 어떤 복지를 베푸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중 하나가 ‘행정비용’인데, 이는 결코 만만치 않다. 따라서 국민 모두에게 1/n 로 나눠주는 것이 더 현실적인 방법이다.

또 하나, ‘복지의 역설’이 작용한다. 적은 수에게 복지혜택을 베풀면 결국 폐지되게 된다는 것이다. 부자에게도 줄 때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받게 된다.

다음,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주어야 하느냐가 문제될 수 있다.

여기서 일의 개념이 보통 임노동으로 제한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반론이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임노동 아닌 일들이 있다. 소위 ‘그림자 노동’이 그것이다. 가사노동, 사회봉사, 예술활동, 친환경 농사 등 무수한 노동도 임노동만큼 인간과 사회에 중요하다. 따라서 그들도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째, 기본소득, 선거, 진보진영

그렇다면 기본소득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어떤 작용을 했는지 알아보자.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무상급식은 결정적인 요인이었고 오세훈이 물러나고 박원순이 승리한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총선과 대선에서 반값등록금, 무상보육, 기초노령연금 등이 선거의 주요 정책으로 출현했다.
명시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두 기본소득의 변용이었다.

이렇게 기본소득은 급진적이면서도 매우 대중적인 이슈라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미 기본소득이 국민적 요구라는 것이 드러났고, 정치권은 이것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총선, 대선 패배이후 야당과 진보진영은 계속 헤매고 있고, 국민 대중들에게 새로운 대안이나 아젠다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적인 상이 절실한 이때 방향을 못 잡고 있다.

기본소득을 과감하게 정책이나 공약으로 채택하여 대중에게 다가가야 할 시점이다
 
다섯째, 기본소득의 긍정적인 효과

기본소득은 유토피아적인 발상임과 동시에 매우 현실적이며, 그 긍정적인 효과는 셀 수 없이 많다고 본다.

대표적인 것 세 가지만 거론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지금은 대다수가 직장과 생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정말 인간으로서 해보고 싶은 일을 못하고 평가절하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존엄을 배반하는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다.

기본소득의 실시와 함께 최소한 경제적인 필요가 충적되면, 이는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갖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창의적인 재능, 잠재력, 혹은 끼를 발휘하여.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을 펼칠 수 있다. 드디어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다.

둘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시대적인 조건에 맞다.

지금은 국가적, 전 세계적으로 경제성장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산업화와 병행되었던 일자리 창출과 고용증대는 사실상 어렵게 되었다.

자동화. 정보화 확대되면서, 기존의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다. 기본소득은 이 실업문제의 해결에 결정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셋째.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추구가 증가할 것이다.

지금 대다수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가 문제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구조와 체제 속에서 발버둥치면서 살고 있다. “이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현실이다.

대안사회,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거나 탐색하거나 추구하고 실험해보는 것이 어렵다. 생존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은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기초적인 측면들을 알아보았다.

잘 실행된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고 새롭고 희망찬 세상을 여는 통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론 풀어야 할 과제도 넘어야 할 산들도 많다.

그러나 새 세상을 여는 일이 어찌 간단한 일이겠는가. 우선, 함께 토론하고 논의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보자.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은 녹색평론 131호를 구해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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