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여수YMCA 사무총장
군사혁명과 유신독재라는 ‘우상’을 깨고, 민주주의 ‘이성’으로 ‘전환시대’를 열고자했던 그 시절 흐름의 정점이 ‘87체제’다. ‘6.29(항복)선언’으로 종식된 군사독재를 철저히 심판하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역사로 새기기 위해 민주주의제도를 종횡으로 얽은 체제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5년 단임 대통령이 여섯 번 째, 한 세대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의 좌표는 어떠한가. 너무 멀리 와서 아득한가, 아니면 벗어나려 몸부림쳐도 그 언저리인가.

어떤 점은 변화 발전했고 어떤 점은 구태하다는 것이 빤한 답이지만, 정치권력만큼은 계절 변화의 무상함을 뛰어넘는 널뛰기를 해왔다. 한 마리 제비로는 바로 봄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사무치게 일깨워준 노태우, 봄이되 봄 같지 않았던 김영삼, 너무 뜨거울까봐 조심만 하다가 정작 계절성을 잃어버린 여름 김대중, 늦여름 열기를 되살리려 애쓰다가 결국 서늘한 서릿발에 물러서고만 노무현, 그리고 ‘잃어버린’ 계절을 찾아 겨울로 되돌아가는 ‘이명박근혜’.

10일 핀 꽃 없고 10년 권력 없다지만 불과 몇 년 전 그토록 소중했던 것이 오늘은 천덕꾸러기가 되고 천형의 이슬로 사라졌던 것들이 부활해 활보하는 세상, 10년 공든 탑이 예사로 치워지고 하는 세태는 아무래도 부조리하게만 느껴진다. 교과서 내용이 정권 입맛 따라 바뀌니 형제간에도 세대차이가 생길 참이다. 국제정세 대처도 오락가락이니 세계관이 흔들릴 지경이다.

만사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주의 가치와 제도가 흔들거리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평등세상 동학혁명, 자주독립 3.1운동, 반독재 4.19혁명, 주권재민 5.18, 그리고 시민사회 6.10으로 면면히 흘러온 민주주의가 그예 멈추는 것 아닌지, 아니 유신독재 후계세력에 의해 뒷걸음질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이명박의 역사교과서 수정에서부터 조짐이 있었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아예 드러내놓고 과거회귀가 되고 있다. 대통령의 통치스타일 하나만 보더라도 따로 사례를 열거할 필요가 없다. 작년 세월호 참사 때 보여준 무책임과 책임전가가 올해 메르스 사태로 이어지면서 이제 지지층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가 비록 여당의 대표라 하더라도 내 뜻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니라면 내치는 대통령이니 과연 그 앞에서 어떤 이가 민주주의를 간언할 수 있을까. 이런 대통령 밑이라야 숨 쉬며 살만하다는 듯 그에 장단 맞추며 칼춤을 휘두르는 세력이 지키고 서 있으니 나가 떨어져 죽는 것은 국민이요, 민주주의일 밖에...

아주 어이없게도 시절이 이렇게 이르도록 거의 아무런 잘못도 없는 우리 호남민들만 새삼스런 고뇌에 빠져들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뽑아놓은 국회의원들은 야당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편 가르기에 몰두한다는 몰매를 맞고 다니지, 표 안 줬다고 대놓고 찬밥 취급하는 겨울대통령에 일일이 대꾸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참으로 고약스런 좌불안석이다.

이러다 봄이 오는 것이 세상이치니 그저 꾹 눌러 참고 어서 겨울이 가기만 기다리자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럴까? 자연의 이치는 그러할지 모르지만 사람세상 이치는 또 다르다. 한 때 사회주의체제로까지 기울었던 일본사회도 우경화가 공고해지자 자민당 반세기 흐름을 타고 있다. 우리도 지금의 야당대로라면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봄여름이면 역차별을, 겨울에는 찬밥신세를 감수해야하는 우리 호남민들의 이 고질적인 프레임을 어떻게 떨쳐내야 할까. ‘삼복추위’에 시린 손을 불며 생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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