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까지 침식 무료 제공하는 한옥펜션

▲ 문수현
순천여고 교사, 순천대 강사
지리산 기슭에는 나그네를 공짜로 재워주고 밥을 먹여주는 ‘무료 펜션’이 있다. 언제나, 아무나 와서 숙식을 할 수 있다. 다만 하루 최대 40여명이 묵을 수 있는데, 선착순이다. 주인장은 밤에 손님들에게 술과 차를 대접하고 노래와 춤을 선사한다. 아침에 손수 식사를 제공한다. 공짜가 없는 세상에 사는 손님들은 마음이 개운치 않다. 그러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주인장을 힘들게 하는 일이다. 그곳에서는 하룻밤은 물론 닷새까지는 침식이 무료로 제공된다. 더 묵고 싶으면 닷새 후 아랫마을에 내려가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오면 된다.

펜션은 앞뒤채 2동이다. 본채는 맘먹고 지은 ㄱ자 한옥이다. 방이 서너 칸이다. 뒤채는 본채와 거의 붙어 있는데 ㅡ자형이다. 방이 3개 있다. 두 채 다 자신과 지인들이 지리산에서 나무를 구해 직접 지었다. 지붕엔 구운 흙기와를 얹었고 천정 위에는 황토를 몇 톤 얹어 보온단열재로 썼다. 문틀과 창틀은 고급 홍송으로 짜서 소나무의 맑은 기운이 느껴진다. 방바닥은 무명천을 바르고 콩댐을 해 따뜻함과 포근함을 더했다.

장비 닮은 주인장은 손님 섬기는‘남자기생’
주인은 주인 행세를 하지 않는다. 밥해주고 이부자리 챙겨주고 술이나 차를 따라주는 사람이라 자칭 ‘남자기생’이라 한다. 그 사내는 머리를 빡빡 밀었고, 수염은 길렀다. 얼굴이 크고 붉으며,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기골이 장대하다는 느낌을 준다. 얼핏 사천왕상이나 장비를 닮았다. 잿빛 옷을 입었지만 중은 아니다. 비승비속. 사내는 경상도 땅에 살면서 지독한 전라도 사투리를 시원하게 쓴다. 완돈가 진도가 고향이다. 그 사내 이름은 알았지만 잊었다. 그 집 당호는 알지만 밝히지 않는다. 그가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구 꺼리기 때문이다. 나이는 알 수 없다. 아마 일흔 전후일 것이다. 그가 혼인을 했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가 혼자 사는 것은 분명하다.

국기 하기식을 하는 월남 참전용사
그는 월남전에 참전했다 부상을 입은 보훈대상자이다. 그래서 그 집 마당에는 국기게양대가 있고 매일 정해진 시간에 혼자 국기 게양·하기식을 거행한다. 그는 젊은 시절 서울서 번듯한 직장에 다녔다. 친구나 지인들 술 사주고 밥 사주고, 보증서거나 돈 빌려주고 떼이는 일을 잘했다. 당시 토요일 오전 근무가 끝나면 전국 명산을 돌아다녔다. 월요일 아침엔 그 차림새로 출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간 돈을 모았다.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퇴직금을 합해 거처를 마련하기로 했다. 그간 돌아다니다 눈여겨 둔 지리산 기슭으로 왔다. 친구·지인들과 터를 닦고 한옥을 지었다. 그의 집 마당이나 마루에서 보면 그곳이 명당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지친 사람들 편히 쉬게 하고 싶어
그는 왜 이렇게 살까? 세속적 욕망이 부질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하루나마 지친 심신을 편히 쉬게 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정갈한 이부자리를 덮고 잘 수 있게 늘 호청을 빨아 까실까실 풀 먹여 9채를 준비해 둔다. 뒤채에는 스님, 신부, 수녀 등 성직자 전용 방 한 칸이 있다. 여름 휴가철이나 겨울 연휴 때 손님이 넘치면 그는 안방을 내주고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잔다. 성직자실이 비어 있어도 손님은 물론 자신도 거기서 자지 않는다. 성탄절엔 트리를 세우고, 초파일엔 연등을 단다. 무장무애!

1년 내내 쌀·술 떨어지지 않아
비용은 어떻게 해결할까? 쌀과 술은 자신이 거의 사지 않는다. 본채 툇마루에 쌀 포대와 술 박스가 있는데, 신기하게도 1년 내내 빈 적이 없다. 어떤 분이 쌀과 술을 바닥내고 가시면 때맞춰 술, 쌀, 삼겹살을 남기고 가시는 분이 온다. 보훈대상자 연금이 얼마 되지 않지만,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은 없다.

그 사내는 “몇 년 안에 이 집을 봉사단체에 기부하고 나는 따로 소박한 초막을 지어 혼자 살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니 지금 그 집에 그 사내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를 잊은 사람’, 댓돌에 놓인 검정 고무신 한 켤레와 함께 생각나는 지리산 그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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