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욱은 누구인가? 1

▲ 주철희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여순센터 소장
여순사건은 여수와 순천에서 인근 지역까지 빠르게 확산하여, 좌익세력과 봉기군의 활동 근거지가 되었다. 군인의 ‘반란’에 수세적으로 내몰린 정부와 국방부는 봉기군의 확산에 주목했다. 즉, 군인만의 반란으로 전남동부지역을 점령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봉기군에 결합한 민간인을 주시한 정부는 여순사건의 주도인물에 대한 인식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했다.

10월 26일, 육군참모장 정일권(丁一權) 대령은 국방부 출입기자단에게 기자회견을 자청한다. 정일권 참모장의 입에서는 놀라운 인물이 등장한다. 여수여중학교 교장 송욱(宋郁)이다. 송욱은 1914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명은 송옥동이다. 그는 고창중학교와 보성전문 법과를 졸업하였다. 1938년 서울 상명여학교에서 교사를 지냈고,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형무소에 복역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상명여학교에 복직한 그는 고향에 처음으로 설립된 영산포중학교 교장으로 초빙되었고, 1946년 광주서중 교감을 거쳐 여수여중 교장으로 재직 중 여순사건을 맞았다.

정일권의 기자회견 출처는 여순사건 발발 당시 목선(木船)을 타고 목포로 탈출한 제14연대 연대장이었던 박승훈(朴勝勳) 중령의 진술이었다. 박승훈은 “10월 19일 21시 여수폭동 발생의 실정은 14연대 내 봉기군 장교는 병영에서, 일부 경찰 및 청년단은 경찰서와 시내에서 동시에 계획적으로 폭동을 일으켰음. 여수 반란 총지휘자는 여수여중 교장 ○○임”이라고 진술했고, 정일권이 발표한 것이다.

정일권은 기자회견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보성전문학교 동창생 이군혁의 말도 소개했는데, “宋군은 재학 중에 공산주의자로 학생들 간에 이름이 떠돌았다. 일제 관헌에 체포된 일은 없었으나 괴로움을 많이 받았는데, 가족 관계는 그 후 어찌 되었는지 잘 알 수 없다”고 했다. 송욱이 학창시절에 공산주의자로 활동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군혁은 여순사건 발발 이후 학도호국단 결성당시 총무부장으로 활동했으며, 안호상 문교부장관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우익인사라고 할 수 있다.

 14연대에서만 ‘반란’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경찰서에서 시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즉 경찰과 군인과 청년단체가 손을 잡고 계획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당시 군과 경찰의 갈등은 매우 컸다. 그런데 경찰과 군인이 손잡고 반란을 일으켰다고 주장한 것이다. 박승훈이 14연대장으로 취임한 시기는 대략 10월 5일~15일 사이다. 당시 연대장 박승훈은 부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부대 내의 좌익활동에 대한 이상한 징후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14연대 군인이 저지른 반란에 대해 연대장으로서 책임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여순사건 발발 당시 연대장이었던 박승훈 중령의 기자회견 내용과 그의 사진이다.

박승훈 연대장은 10월 28일 여수에서 탈출과 사건의 경위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했다. 발언 내용을 정리하면, 적색분자들의 계획적인 행동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일부 군대를 선동하여 ‘반란’이 감행되었으며, 반란 가담 수는 1개 대대에 병사 5백 명 정도이며,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2개 대대가 있었으나 무기고를 점령당해 실탄이 없어 싸울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박승훈의 기자회견에서는 송욱이 언급되지 않았다.
이범석 총리도 10월 26일 국회 보고에서 “여수 봉기군의 민중을 총연합 지휘하는 최고사령관은 여수여중학교 교장이던 자”라면서 송욱을 여순사건 주동자로 단정하였다.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정부는 ‘반란’의 책임자를 군인에서 민간인으로 변화시켰다. 정부도 군대조직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책임을 면하고자 반란의 주도세력을 지방 민중과 학생들에게 전가했다. 이런 의도로 지역에서 신망이 높았던 송욱 교장이 국방부에 포착된 것이다.

송욱 교장이 정부의 표적이 되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10월 20일 중앙동 여수 인민대회 의장으로 5명을 선출하였는데, 송욱 교장이 포함되었다. 기사에는 5명이라고 했지만 언급인 이름은 6명(이용기, 박채영, 송욱, 유목윤, 문성휘, 김귀영)이었다. 둘째는 10월 22일에 여수군 인민위원회가 주최하는 대강연회 연설자로 송욱 교장과 인민위원장 이용기가 나온다고 포스터 광고가 거리에 부착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송욱 교장을 민중의 총연합 지휘하는 최고사령관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학생들 특히 여학생의 참가도 송욱을 총사령관으로 몰아가는데 주요하게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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