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맞아 교우들과 담양 추월산을 등반했다. 작은 배낭 속에 들어 있는 준비물은 김밥 두 줄, 물 한 병, 초콜릿 하나, 오이 몇 조각, 땀수건이 전부였다. 함께 한 교우들 역시 비슷한 내용물이다. 점심 먹고 난 후 소량의 쓰레기는 한데 모아 집에 가지고 와서 분리배출을 하니 버릴 쓰레기는 거의 없다. 우리 일행이 추월산에 남긴 흔적은 사진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교우들이 관광지나 다른 지역을 탐방할 때 지켜온 일상적인 지침이다. 보통 사람들도 관광지에 쓰레기를 남기지 않고, 분리해 배출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렇게 당연한 일을 자랑삼아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필자가 재직하는 교회는 순천만에 있고, 교우들 역시 80%가 순천만에 사는 주민이다. 그렇다 보니 많은 방문객을 맞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방문객이 남겨 놓은 방대한 쓰레기 더미를 선물(?)로 받는다. 방문객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는 상가를 빼고는 내가 사는 마을을 쓰레기로 더럽히는 방문객들이 반가울 리 없다. 도리어 마을의 고요를 깨뜨리는 침입자들로 보일 뿐이다. 이런 불편을 많이 겪어본 우리가 역지사지의 교훈을 얻었다고나 할까. 내가 불편한 일은 남에게도 하지 않아야 함을 깨우치게 된 것이다. 누구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이웃을 향한 시선이 넓어지게 되어 있다. 내가 사는 마을을 깨끗하게 지키고 싶은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사는 마을도 깨끗하게 지켜줘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린 어딜 가든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
만일 누가 내 집 마당에 더러운 쓰레기를 쏟아놓고 간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런 사람을 향해 이구동성으로 불량한 사람이라고 외쳐댈 것이다. 그렇다면 남의 마을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여겨야 할까? 개인집에 버리는 것보다 더 나쁜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이다. 내가 지불한 입장료에 쓰레기 처리 비용이 들었으니 버려도 된다는 생각은 그리 좋은 사고는 아니다.
내 쓰레기는 내가 처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따로 있고 줍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 불공평하다. 10여 년 전 일본의 번화가인 신주꾸 거리와 하라주꾸 거리를 거닌 적이 있다. 마침 버려야 할 휴지조각이 있어서 길을 걷는 동안 쓰레기통이 나오기를 살폈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쓰레기통을 거리에 두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쓰레기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의 거리에는 쓰레기통이 간간이 있던 시절이었다. 내 쓰레기를 남이 치워주기를 바라는 것은 비민주적인 생각이다. 쓰레기로 이웃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이웃사랑을 가르친 그리스도의 정신과도 배치되는 일이다.
이제 건전한 시민 정신을 발휘하면 좋겠다. 집을 나서는 순간 휴짓조각 하나라도 버리지 않겠다는 원칙을 마음에 정해 두는 것이다. 특히 나의 자녀들에게도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내가 만들어낸 쓰레기는 내 집으로 다시 가져와서 처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어딜 방문하든지 방문지 주민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 지역에 진입하는 순간 ‘우리가 당신들의 사는 지역에 들어가겠으니 너그러이 용납해 주십사’하는 마음이어야 하고, 나올 땐 마치 사둔 집 방문을 마치고 나올 때 심정으로 혹시 폐를 끼친 것은 없는지 머물다 온 뒷자리를 확인해야 한다. 여행이란 나만 만족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이웃을 불편하게 하는 여행은 나쁜 여행이다. 방문지에 남길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방문지 주민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다. 지금은 쓰레기 제로 여행을 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