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어린이표』/ 황선미 글, 권사우 그림 / 웅진닷컴

선생님이 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나쁜 어린이표’를 한 장 받는다. 건우는 '착한 어린이 표'를 받으려고 노력하지만, 번번이 '나쁜 어린이표'를 받게 된다. 건우는 결과만 보는 선생님이 야속할 뿐이다.

 
『나쁜 어린이표』에서 건우는 반장 선거하는 날 반장 후보로 나선다. 하지만 7표만 얻어서 반장이 되지 못한다. 선생님이 후보자가 자기 이름을 쓰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건우는 자신이 반장이 되고 싶어서 후보로 나섰는데 자신의 이름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자기 이름을 쓴다. 그럼에도 반장이 되지 못해서 몹시 속상하다. 청소시간에 반장이 된 아이들이 선생님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마치 그들만 중요한 사람이 된 듯해 의기소침해진다. 그때 친구가 와서 반장이 안 돼서 속상하냐며 아이들이 아직 널 몰라서 그럴거라고 위로해준다. 건우도 기분이 풀리고 좋아진다. 친구가 ‘2학기때는 꼭 반장이 되길.’ 외치자 건우도 들고 있던 대걸레를 들고 ‘꼭 반장이 되길.’하고 외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확 달려들었다. 건우는 대걸레를 든 채 바닥에 엎어졌고 창가에 있던 화분이 대걸레에 맞아 퍽석 깨졌다. “세상에 이게 무슨 짓이니?” 선생님이 화나서 소리쳤다. 건우는 자기가 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데 모두 자기만 쳐다보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선생님은 ‘우물거리는 소리를 더 듣지 않으시고’ 건우한테 자기 잘못을 남한테 떠넘기려 한다고 나쁜 어린이표를 준다.

건우가 넘어졌을 때 선생님은 건우를 걱정하기 보다는 화분 깨진 것에 더 화를 낸다. 건우는 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스럽고 게다가 화분까지 깬 사람으로 몰려 억울하다. 그 억울함을 풀어 줄 친구들까지 진실을 밝히지 않고 외면하는 것에 배신감을 느낀다. 선생님이 만약 괜찮냐고 건우 걱정부터 했다면 친구들도 누군가는 미안하다고 나설 것이고 다들 건우 안부부터 챙길 것인데, 선생님이 화를 내면서 공포분위기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아무도 나설 수 없고 말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런 경우는 가정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예기치 않게 벌어진 상황에 대해 “넌 도대체 왜 그러니?” 하고 화를 내는 순간 아이는 자신이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죄인이 되거나 늘 그런 아이라는 낙인으로 주눅이 들고 만다. 그래서 벌어진 상황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고 자신의 행동에대해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 피시방에서 동네 형에게 계속 돈을 갖다 바치는 아이 이야기를 언론에서 본 적이 있다. “너 피시방 온 거 너네 엄마한테 이른다”고 협박하여 갈취했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상의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세상에는 끔찍한 일이 많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아이가 부모나 선생님을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대신 겁내는 것입니다.
『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양철북) 중에서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 협박하고 윽박지르는 것이 곧 폭력이다.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리는 것은 스스로도 자신을 속이게 하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면 자신이 스스로 판단한 것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지고 누군가에게 협박당하고 윽박지름을 당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떤 이유로도 협박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중단시켜야 하는데 자신이 뭔가 잘못 된 사람인 것처럼 여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협박이나 윽박지름으로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위축 당했던 것만큼 누군가를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협박과 폭력, 윽박지름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폭력이란 관계가 단절되거나 왜곡되는 것이다.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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