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사내하청노조 덕산지회 허형길 씨

자신이 일했던 광양제철소가 내려다보이는 가야산 산책로 입구에서 목숨을 끊은 고 양우권 분회장의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에서 그의 오랜 동지이자 같은 이유로 해고되어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포스코 사내하청노조 덕산 분회장 허형길 씨를 만났다. 인터뷰팀이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례식장엔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양우권 분회장을 끊임없이 협박하고 회유했던 것으로 알려진 EG테크 노무팀장이 사장의 편지를 들고 장례식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유족이 노무팀장에게 항의하는 애처러운 실랑이가 30여 분 동안 계속되었다. 유족의 악다구니마저 힘을 잃었고, 유가족의 분노가 안스러웠다.

다음은 포스코 사내하청노조에 소속된 덕산 허형길 분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고 양우권 분회장과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는가?
 
2006년 12월 EG테크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당시 내가 다니던 태금산업(덕산)은 이미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때 도움을 주면서 알게 되었다. 지금은 전국금속노조 산하 EG테크 분회, 덕산 분회, 성광 분회가 포스코 사내하청 지회에 함께하고 있다. 애초 이 세 곳 외에 영국산업 분회도 있었지만, 회사 측의 회유로 해산됐다. 영국산업 지회도 양우권 분회장처럼 한 명이 끝까지 노조에 남아 있다가 해고당했다.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지만 회사는 복직을 시켜주지 않았고, 정년퇴직 나이가 되어 현장에 복귀하지 못하고 퇴직 처리되었다.

 
▶ 회사 측에서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포스코가 협력사에 대해 무노조 정책을 주문한다. 해산이 되지 않을 경우 기업노조, 그것도 안 되면 어용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조를 무력화시키라고 종용하고 있다. 해고한 뒤 부당해고 판결이 나도 현장에 복직시키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 노조 탄압에 포스코가 관계되어 있다는 증거가 있나?
 
2011년에 옛 삼화산업(현재는 성광산업) 노조에서 입수한 문건에 창조컨설팅을 통해 노조를 파괴시키는 시나리오가 포함되어 있었다. 회사 측의 집행부 회유, 비조합원 중심 노사위원회 구성, 제2노조를 설립해 힘을 실어주고 민주노조 무력화시키기 등을 통해 민주노조를 축소시키거나 해체시키는 것이다.

 
▶ 노조 탄압 시나리오에 맞춰 진행된 구체적인 사례는 뭐가 있나?
 
지난 4월에 성광산업에서 구체화되었다. 비조합원 전체가 제2노조에 가입했다. 목적은 기존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무력화 시키자는 것이다. 제2노조를 만들기 전에 기존 조합원의 수를 전체 노동자의 30% 수준으로 줄이고, 제2노조에 가입하게 하는 것이다. 한 사업장에 노조가 둘 있으면 합의해서 교섭 대표를 정하라고 한다. 단체교섭권에 관한 법이 그렇게 개정 되었다. 그 법을 악용해서 제2노조를 만들어 노노갈등을 부추기고 어용노조가 교섭권을 갖게 하는 것이다.

 
▶ 포스코가 무노조 정책을 협력사에 강요하고 관여한 것이 드러난 사례가 있나?
 
포스코와 협력사는 매년 협력계약을 체결한다. 여러 평가항목 중에 ‘조직안정도’라는 항목이 있다. 이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다. 민주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임금이나 복지, 근로조건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단체교섭에 임하기 때문에 사측과 갈등이 발생한다. 포스코는 그 경우 조직안정도에서 최하위 점수를 준다. 결과적으로 평가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게 되고 회사 측은 모든 책임을 노조에 전가하며 노조와의 협상 때 임금인상을 최저화시킨다. 고인이 남긴 일기장에도 부장이 조합 탈퇴를 종용하는 과정에 “포스코에서 압력이 심하다. 계약물량 적게 주고 작업비 적게 주겠다고 한다. 너도 힘들고 회사도 힘드니 그만 탈퇴해라”고 한 내용이 있다.

 
▶ 고인의 징계와 해고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2008년 1월 EG테크 분회에서 활동하던 지회장, 교섭위원, 집행위원이 회사 측의 회유에 넘어가 금속노조 탈퇴하고, 기업별노조로 전환했는데 고인을 포함 3명이 금속노조에 남았다. 광양제철소 근무 형태는 교대근무와 상주근무로 편성돼 있다. 당시 금속노조를 탈퇴하지 않은 3명은 교대근무자들이었다. 상주근무자는 상대적으로 임금 수준이 낮다. 회사에서는 교대근무를 하던 3명의 보직을 상주근무로 바꿔 경제적 압박을 주고, 탈퇴하면 교대근무자로 복직 시켜주는 방식으로 탈퇴를 종용했다. 그렇게 두 명은 노조를 탈퇴하고 고인만 끝까지 남았다. 상주근무자는 받을 수 있는 수당이 주말수당이나 휴일 근무수당이 전부다. 고인의 경우는 노조를 탈퇴하지 않고 버티니 주말이나 휴일근무도 배제시켜 압박을 주고 그래도 탈퇴하지 않으니 다른 부서로 배치전환 시키고 조끼 입고 작업했다는 이유로 감봉의 징계를 내리고, 그 이후 대기발령 시켰다.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을 책상하나 놓인 사무실에서 작업표준서만 보고 있게 하고 수시로 부장, 노무팀장이 탈퇴를 회유했다. 다른 직원들에게 고인과는 눈 마주치는 것마저도 못하게 하면서 고립시켰다. 그로인한 스트레스성 우울증으로 병원치료를 위해 조퇴를 신청했는데 불허하고, 119를 불러 병원에 다녀왔는데 무단이탈했다는 이유로 정직의 징계를 했다. 정직은 직무와 권한이 정지되는 것으로 출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인데, 고인에게는 회사에 나와 있으라고 했다. 고인이 출근을 거부하니,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연퇴직 처리를 했다. 당연 퇴직은 곧 해고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법원에 부당해고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이 났다. 그럼에도 복직을 시키지 않다가 작년 4월에 복직을 시켰다.

 
▶ 겉으로는 법을 따랐지만 속으로는 법의 정신을 어긴, 무늬만 복직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복직 후 사측의 대응과 고인의 상태는 어떠했나?
 
부당해고라는 판결은 원직복직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고되기 전 일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회사는 책상 하나에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은 노트북 한 대가 전부인 2평짜리 사무실에 CCTV까지 설치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일도 시키지 않았다. 그로인한 상실감, 배신감, 박탈감 때문에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 결국 혼자 앉아 있는 감옥 같은 사무실 모습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법원 판결 받고 복직했는데, 억울하다”는 내용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 이것이 CCTV에 포착되어 2015년 5월 1일자로 또 정직 처분을 내렸다. 오직 현장에 가고 싶었던 고인의 간절함이 가슴 아프다. 유서에도 “화장해서 제철소 앞에 뿌려 달라. 새의 먹이가 되어서라도 현장에 가고 싶다”고 썼다.

 
▲ ‘ 양우권 열사 정신계승 결의대회 ’ 가 지난 21일 광양시청 사거리에서 1천여명의 노동자·시민이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다.


▶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이다’는 말이 있다. 직장을 잃어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워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해고는 모든 관계에 대한 박탈이다. 경제적인 부분도 어려워지고, 동료들과 함께 일했던 공동체에서 쫓겨났다는 자괴감, 박탈감이 상당하다. 그동안 살아온 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두통, 우울증, 정신불안 등을 겪게 되고 견뎌내지 못했을 때 생의 끈을 놓게 만드는 것이다.

 
▶ 그런데도 고인이 노조 탈퇴를 거부하고, 버텼던 이유는 무엇인가?
 
2006년 EG테크 노조가 설립되기 2~3년 전에 EG테크에 노조가 있었다. 그 당시에도 회사의 회유에 노조가 해산을 했다. 해산을 하고 나니 현장 근로조건이 열악해 졌다. 그 같은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끝까지 노조 깃발 붙들고 노동자를 대변해 회사에 할 말도 하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시정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고인은 견딜 수 없어 죽음을 선택 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호소하고 싶었던 것이다. 더 이상 회사에서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 노조와 회사는 갈등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다. 갈등을 조정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 신뢰하고 이해 할 수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합의를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교섭을 할 때 노조는 임금인상을 요구하더라도 회사 재정이 어려워질 정도의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는다. 회사 재정을 확인하고 전체 물가 상승률이나 동종업체의 임금 수준, 재정 현황 등을 분석해서 임금요구안을 만든다. 회사는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 자체를 불쾌해 한다. 그러다 보니 교섭 기간이 길어지고 노조가 법에 보장된 단체행동권을 행사하고 노사 간 대립이 생긴다. 외부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노동조합은 사업장에 맞는 요구를 하고 노사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노동조합에 양보하는 교섭을 하는 것이 맞다. 양보는 힘 있는 자가 양보하는 것인데 현실은 노조가 회사에 양보를 한다.
 
 
▶ 지금 유족들의 상태는 어떤가?
 
지난 5월 9일 EG그룹 체육대회가 충남 금산에서 있었다. 박지만 회장이 참석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동안의 부당한 처우를 알리기 위해 그 곳에 갔다. 운동장에 있던 동료들은 등 돌리고 모른 척 했다고 한다.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다. 오후 3시 30분 경 광양에 도착해 고인이 평소 자주 찾던 가야로 산책로 앞에서 하차를 했다. 그 곳에서 밤을 새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다음 날 아침 7시 10분 경 포스코 사내하청 지회장과 미망인에게 전화를 하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장소는 끝까지 밝히지 않았지만 미망인이 혹시나 하고 현장에 가서 고인을 발견한 것이다.

 
▶ 앞으로는 어떻게 활동할 계획인가?
 
포스코와 EG테크는 노동조합 탄압으로 죽은 양우권 분회장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한다. 열사와 유족에게 사죄해야 한다. 열사가 유서에 남긴 대로 포스코가 불법 파견한 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 해야 한다.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 외에도 포스코 사내하청노조 해고자 6명의 복직과 열사의 죽음에 대한 산재 인정, 유족에 대한 정당한 배상 등 4가지 요구사항을 포스코에 보냈다. 포스코는 협력사 문제는 포스코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EG테크는 대표와 임직원의 조문을 허락해 달라는데, 노조는 명백하게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유족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포스코 사내하청노조에서는 현재 모든 조합원이 파업하고 상경투쟁 중이다. 청와대, 국회 앞, EG그룹 본사, 포스코센터, 박지만 자택 앞에서 1인 시위와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15일 상경해서 지금까지 노숙하고 있다.

노조에서는 회사측에서 문제를 해결하면 내려온다는 입장인데, 아직 별다른 진전이 없다. 그리고 광양에서는 시청 사거리에 야외 분향소를 설치해서 양우권 열사 추모 촛불 문화제를 매일 하고 있다. 최대한 교섭을 통해 회사 측의 책임 인정과 사죄를 받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다행인 것은 유족들이 일체의 권한을 노조에 위임하고, 노조를 믿고 의지하고 있다.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