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용창
최근에 제가 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한병철 님이 쓴 ‘피로사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20세기 철학을 탄탄히 익힌 철학자가 21세기 사회를 통찰한 책인데, 이것이 비폭력대화에 대한 고민도 깊게 해주는 점이 있어 말씀을 좀 드리려고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인 즉, 지금의 사회는 우리 모두를 피로하게 만드는 피로사회이며, 우리 모두를 잠재적인 우울증 환자로 만드는 우울사회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여러분도 느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갈등이 노동과 자본의 갈등이라는 것은 20세기나 21세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20세기까지는 노동자와 자본가가 명확히 나누어져,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려고 노동을 통제하거나 임금을 줄이거나 하는 식으로 직접 통제를 하는 반면, 21세기에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고, 사람들은 모두 ‘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착취하며 노동에 내몰거나, 혹은 자신과의 경쟁에서 내몰려 우울증 환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이 책이 사회를 너무 우울하게 진단하는 게 아닌가 싶어 좀 짜증이 났지만, 곱씹어 볼수록 맞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이 진단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선에서 논의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서점에 가면 이런 저런 류들의 자기관리 서적이나, 혹은 소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시크릿류의 황당무계한 책들도 판을 칩니다. 이런 책들의 대부분은 그런 사회적 경쟁이 지닌 모순점을 인지하기보다, 어쨌거나 경쟁에서 아등바등 이겨서 혼자만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피로사회라는 시스템의 희생자임을 알지 못한다면 그런 식의 자기관리는 성공하기 힘들겠지요.

그럼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저는 비폭력대화가 우리에게 권하는 감정과 욕구의 명상이야말로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비폭력대화는 나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알고, 그 감정의 근원인 욕구를 알고, 나와 우리의 욕구(혹은 필요)를 평등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권합니다.

너도 나도 ‘더 필요하다’고 믿는 돈이라는 것은, 재미있게도 비폭력대화에선 ‘필요(욕구)’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자율성, 성취, 돌봄, 신뢰 등으로서 돈이 전혀 없어도 충족시킬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돈이 있어야만 자신의 욕구가 충족될 수 있다고 착각하고는, 그 돈으로서 충족시킬 미래의 욕구를 위해 현재의 욕구를 포기해버립니다. 그렇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 대가는 바로 피곤하거나 우울한 시간의 연속인 것입니다.

이제, 21세기 피로사회에서 피로하지 않게 살 해답을 생각해봅니다. 내가 지금 어떤 일이든 하고자 할 때, “그 일을 통해서 내가 충족시키고자 하는 나의 욕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저 사람의 감정은 저 사람의 어떤 욕구에서 나오는가?”라고 질문합니다. 이런 질문을 계속 하다보면, 굳이 자신을 스스로 착취해가면서 피로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지 않더라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방법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나와 다른 사람의 욕구가 동일하며, 그 동일한 욕구의 기반 하에서 연민과 협력이 가능함을 알게 됩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말했던 것처럼, 이 세상에 우리의 필요를 충족시킬 자원은 언제든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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