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소금 붉은 도깨비』 / 김우경 글, 장순일 그림 / 고인돌

별장지기 아버지와 달팽이산 아래서 단둘이 사는 ‘소금’이는 주변에 있는 나무, 동물들과 대화를 한다. 서로 말을 주고 받을 뿐만 아니라, 생각을 나누면서 각자 개성과 특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부르면서 관계를 맺고 알아 간다. 소금이는 원래 '남이룸'인데 이름을 잘못 올리는 바람에 '남이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아이다.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았던 차에 한참 신나게 놀고 난 후의 몸에 생기는 소금 맛을 본 고라니가 '소금 소금' 그래서 소금이가 되었다. 비가 많이 오던 날 아버지 고무신을 가지고 놀던 소금이는 물에 떠내려간 신발을 잡으러 갔다가 함지골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물이 다 쏟아진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소금이는 푸른머리호수와 잔별늪에 사는 물고기들이 걱정돼 달팽이 왼돌이, 옴개구리 팥떡이와 함께 땅 밑으로 물꼬대왕을 만나러 길을 떠나게 된다. ‘소금이와 달팽이산’(1권), ‘붉은도깨비와 산신령’(2권), ‘잔별늪과 물꼬대왕’(3권)이라는 부제를 달고 21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이 동화는 주인공 소금이와 동물 친구들이 땅 밑에서 물꼬대왕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모험과 힘을 합쳐 달팽이산 개발을 막는다는 이야기다.

달팽이산 숲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현실 세계와 구별할 필요없이 자연스럽다. 이 세계는 자연과 동물, 인간이 조화로운 하나의 생명체로 살아가는 세계다. 책을 읽어갈수록 낯설고 황당하던 세계가 점차 익숙하게 다가온다. 나무 스스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동식물과 말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판타지 동화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의 탐욕과 이익을 위해 개발되는 온천 개발과 골프장 건설 현장이 함께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연과 소통하는 ‘소금이’의 눈으로 그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일 뿐.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 자기중심적 사고를 벗어나 자연의 일부로서 동물, 식물 등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평화와 공존의 세계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을 더 인간답게 하려는 현대의 교육이라는 것이 그 가능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 1권-12~13쪽

“참나, 얘는 어려서 그렇다 치고, 남씨는 왜 그래요? 아이 앞날은 생각 안해요? 초등학교도 안 나오고 어떻게 세상을 살라고 그래?”

“너무 많이 배우면 사, 사람이 때가 잘 묻어서 못써요.”  아버지가 말했다.
...

“장관님 아들은 다른 나라에서 학교 다니지? 똑똑해?”

“본 적은 없지만 똑똑할 거야. 그러니까 외국까지 배우러 갔겠지.”

“뭘 배우러?”

“뭐든.”

“다 배워?”

“어, 아마......그런데 보리수나무랑 어떻게 말하는지, 사향노루랑 어떻게 사귀는지, 새알은 어떻게 다루는지 그런 것은 안 배우지. 못 배워.”

“그건 내가 선생님이야.”

어느 날 이름이네가 관리하는 별장의 주인인 환경부 장관의 남편이 찾아와 아버지를 한심하다는 듯 나무라는 장면이다. 부모로서 아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진심어린 충고다. 그러나 아버지의 어눌하지만 분명한 대답은 학교에서의 배움이 사람을 ‘못’쓰게 한단다. 아버지의 대답은 인간을 병들게 하는 도시를 벗어나 다시 돌아 온 숲 속에서, 기존의 질서 속에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수학, 과학이 아니라 조화롭게 살아가는 자연을 배우고 제 몫을 하는 ‘소금이’를 통해 더 분명해진다.

이름이는 학교에 안 다니지만 산은 친구들 천지고, 놀고 배울 것 투성이다. 시간이 흐르며 이름이는 점점 숲 속의 동물들 나무들과 더욱 가까워지며 숲 속의 한 구성원으로서 ‘소금’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고, 숲 속 친구들을 위해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단지 소금이가 살고 있는 잔별늪을 지키는 일 뿐만 아니라, 땅 속 세계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보호하는 일이었다는 것이다. 친구들과 같이 길을 떠나는 과정, 그 길 위에서 소금이는 새로운 생명들을 만나 친구가 되고, 모두에게 관심이 생기면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특히 문제의 원인이 사람한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친구들과 힘을 합쳐 자연의 파괴를 막아보려는 작전을 짜게 된다. 숲속 동물들과 식물들, 산신령과 물꼬대왕, 그리고 도깨비 아저씨들까지 모두 나서 제 역할을 함으로서 별장주인은 결국 온천과 골프장 개발 계획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소금이가 친구들과 힘을 합쳐 달팽이산 개발을 막아내는 모험 이야기는 단지 상상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 세계와 맞닿아 있다. 개발 이익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해치는 일이 우리 삶과 자연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숲에서 살아있는 생명들과 하나되는 별장지기 아버지와 소금이의 소박하지만 여유있는 삶을 통해 무엇이 가치있는 삶인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거기에 결국 숲으로 다시 돌아온 엄마와 함께 곰실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될 소금이네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저절로 웃음이 난다.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