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민 변호사
“수많은 정치체제 중 우리는 민주주의를 선택했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민주주의는 경우에 따라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혼란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모두 용인하면서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운명을 정하고, 우리 뜻에 따라 삶을 일구어 나가겠다는 것을 결의한 것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우리가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결단이다.

이런 결단에 따른 민주주의는 원칙적으로 직접 민주주의일 것이다. 그런데 직접 민주주의를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간접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있다. 이런 간접 민주주의가 사실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의혹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세계 최초로 보통선거의 이념을 받아들인 미국 헌법의 아버지 제임스 메디슨(James Medison)은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약화시켜야 한다며 “정부의 첫 번째 임무는 무엇보다도 재산이 있는 소수를 재산이 없는 다수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가 철인(哲人)정치를 내세웠던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직접)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빈자(貧者)의 정치체제이다’라고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를 나타낸 바 있다.

장자크 루소가 자신의 저서 ‘사회계약론’을 통해 당대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에 대해 행한 아래와 같은 고발은 간접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영국 인민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의회의 의원 선출 기간에만 자유로울 뿐이다. 의원을 선출하자마자 그들은 곧 노예가 되며, 별것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접 민주주의의 정당성을 그나마 인정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는 국민들이 자유롭게 고민하고 판단하여 선택한 세력에게 권력을 위임한다는 것이다. 내가 외부의 영향 없이 오로지 나의 고민을 통해 자유롭게 ‘나를 대신하여 의사를 결정하고 권한을 행사할 자’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그 사람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노예로의 전락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선택받는 입장에 그쳐야 하는 세력이 적극적으로 국가기관을 동원하여 국민의 의사에 영향을 미쳤다면 간접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서 인정될 수 있는 정당성은 어떻게 될까?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간접 민주주의의 정당성의 근거가 훼손된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사건을 두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일이라고 평가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민주주의는 국민들이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것이기에 이를 유린하는 행위는 국민을 노예로 만드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국민들의 공분을 막기 위해 다른 이슈들을 만들고, 관련 보도가 사라지게 하며, 희안한 진영논리로 물타기 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 국민을 또 다시 속여 노예로 만드는 일이자 분열시키는 일이다.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주인은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려고 노력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에 대해 깨어있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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