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주동민 어린이 시, 조은수 그림 / 창작과비평사



내 동생

 
내 동생은 2학년
구구단을 못 외워서
내가 2학년 교실에 끌려갔다.
2학년 아이들이 보는데
내 동생 선생님이
“야, 니 동생
구구단 좀 외우게 해라.”
나는 쥐구멍에 들어갈 듯
고개를 숙였다.
2학년 교실을 나와
동생에게
“야, 집에 가서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 봐.”
동생은 한숨을 푸우 쉬고
교실에 들어갔다.
집에 가니 밖에서
동생이 생글생글 웃으며
놀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밥 먹고 자길래
이불을 덮어 주었다.
나는 구구단이 밉다



『내 동생』(주동민 어린이 시, 조은수 그림)은 6학년 어린이가 쓴 시로 만든 그림책이다. 동생 선생님에게 불려가서 2학년 아이들이 다 보는데 “니 동생 구구단 좀 외우게 하라”는 말을 듣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 한다. 집에 가니 동생이 생글생글 웃으며 밖에서 놀고 있는데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런데 동생은 집에 와서 밥 먹고 잠이 든다. 이를 어쩌나 안타깝기도 하고 얼른 깨워서 구구단을 외우게 해야지 싶다. 하루 저녁 숙제만 안 하고 잠이 들어도 아침 일찍 깨울 준비를 하고 혹여나 학교에서 뒤처질까봐 선행학습에 매달리는 부모의 마음으로 본다면 속이 뒤집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잠든 동생에게 이불을 덮어 주며 ‘구구단이 밉다’고 하는 이 마음은 뭘까?

아이들의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이라고만 치부하지 말고 찬찬히 들여다보자. 선생님이 “니 동생 구구단 좀 외우게 하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동생은 구구단을 외워야 하는 존재가 된다. 밖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노는 순간에도 밥을 먹고 있는 순간에도 잠이 든 순간에도 구구단을 외워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러니 구구단을 안 외우고 노는 아이가 밉고 구구단도 못 외우면서 태평하게 밥을 먹고 있는 아이가 한심해 보이고 잠까지 자는 아이를 용서할 수 없다. 그런데 “구구단이 밉다”고 말하는 오빠 때문에 생각을 다르게 해 본다. 아이는 학교도 가고 놀기도 하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수많은 것을 하는 존재이다.

그 중 무언가는 하기도 하고 다른 무언가는 안하기도 하고 어떤 무언가는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구구단을 못 외운다는 한 가지 사실이 아이의 전부인 양 생각하고 온종일 그 생각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아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노는 모습은 정말 예쁘다.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도 예쁘다. 온종일 얼마나 열심히 다녔는지 밥 먹자말자 잠이 들어버리는 아이의 모습도 참 예쁘다. 이렇게 예쁘게 볼 수 있는 순간을 모조리 구구단을 외워야 하는데 안 외우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가 못나 보였던 거다.

어디 구구단뿐인가? 부모들은 아이가 정해진 시간에 잠을 자고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정해진 시간에 학교를 가고 정해진 시간에 공부를 하는 말 잘 듣는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 이 마음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할 일을 안 하면 불만스럽고 아이를 나무라게 된다. 있는 그대로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아이가 우리 눈앞에 있다. 그러니 늘 아이가 그렇게 하는지 못 하는지 평가하고 닦달하게 된다. 아이들과 치르는 전쟁에서 아이뿐 아니라 부모도 상처를 받는다. 잘못했다고 아이를 나무라고 채근하는 부모의 마음도 피폐해져 간다. 부모로서 아이와 함께 소소한 기쁨을 발견하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충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그림책을 덮으며 구구단이 밉다는 오빠의 마음으로 아이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같은 공장에서 똑같이 만들어내는 로봇이 아니라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인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와 함께 읽던 그림책을 다시 읽어 보면 내용이 새롭게 들어오는 게 많다. 아이에게 읽어 줄 때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교훈이나 주제를 먼저 떠올렸다면 혼자서 그림책을 다시 펼치면 그림책 속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새롭게 들어올 것이다. 나의 편견을 걷어내고 그림책 속의 낯선 세상을 마주하다 보면 아이들이 보는 세상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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