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현
순천여고 교사. 순천대강사
가로수 사이사이에 보리를 심은 화분이 놓여 있다. 보리가 거리를 장식하는 화초 대접을 받는 것도, 한 달 이상 일찍 이삭이 팬 것도, 짙은 화장을 한 여중생처럼 어색하다.

화분 속의 보리, 옛날의 보리밭
4월은 보릿고개였다. 쌀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익지 않은 잔인한 시간이었다. 이젠 ‘보릿고개’와 함께 보릿국도, 종달새 소리도 행방불명이다. 인터넷에만 존재한다. 꽁보리밥은 가난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건강식이 되어 있다. 옛날 보리밭은 부풀어 오른 꽃봉오리같은 처녀총각이 주체할 수 없는 청춘을 놓아버린 전설의 공간이었지만 지금 보리밭은 축제를 벌이는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봄 들녘에서 보리밭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중고등학교 때 들판에 나가 보리를 밟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 하늘에 주근깨처럼 박힌 노고지리가 노골노골지리지리 아득하게 울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소를 몰고 들판으로 나가 보리밭에 누워 멍을 때린 적도 있었다. 흐린 봄 하늘에 종달새가 하염없이 우는 소리를 듣다가 까닭 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도 했었다. 그 사이 소는 보리를 맘껏 뜯어먹어버렸고, 나는 부랴부랴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보릿고개를 넘고 한하운의 ‘보리피리’를 중얼거리며 사춘기를 보냈다.

추위를 겪어야 열매를 맺는 보리
스물 즈음, 보리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내겐 매우 인상적인 내용이었다. 보리는 시월에 파종한다. 그러면 곧 싹이 나고 얼마쯤(10~15㎝) 자란다. 11월부터 이듬해 2~3월까지는 보리는 거의 자라지 않은 상태로 있다가, 날이 따뜻해지면 크기 시작해 5월말~6월초에 수확한다. 겨우내 보리는 자라지 않는다. 겨울에 자라지 않는 보리를 왜 가을에 심을까? 봄에 심어 키우면 안 되나?

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려 싹이 난 후 겨울을 지나야 이듬해 이삭이 패고 열매가 익는다. 겨울을 지내야만 열매가 맺히는 것이다. 그래서 밀이나 보리는 1년초라 할 수 없고, 월년초 또는 2년초라 한다. 밀과 보리를 봄에 파종해도 싹이 나고 잘 자란다. 그러나 봄에 파종한 밀·보리는 싹이 트고 자라기만 하지, 열매를 맺지는 못한다. 그래서 요즘 이른 봄에 보리를 뿌렸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베어 소 사료로 쓰는 농가가 있다.
그런데 봄에 보리를 파종하여 키워도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씨보리를 냉장고에서 수십 일 동안 0˚~10˚C로 보관했다가 봄에 파종하면 개화하고 결실한다. 이 방법을 러시아 학자 리센코(T.D Lysenko)가 발견했는데, 춘화처리(春化處理, vernalization)라고 한단다. ‘보리는 반드시 겨울을 나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이 ‘추위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꽃을 피우지 못한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역경과 시련을 지나고 맞는 봄
고생이나 피곤이 없는 삶, 늘 풍요롭고 안락한 ‘봄날’만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봄날만 있는 인생은 불가능하고, 설혹 있다 하더라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풍파 없는 세상은 없고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겨울을 버텼기 때문에, 화려하진 않지만 가정이란 꽃을 피웠고 잘나진 못해도 자식이란 열매를 건질 수 있었다.

겨우내 인고의 시간을 보낸 보리는 이제 봄날을 맞았다. 4월 들녘에 서면, 아직 작지만 하늘과 땅의 따뜻한 기운을 머금은 청보리가 보인다. 청보리밭은 싱싱하다 못해 검푸르다. 그들은 봄비를 마시고 황사를 맞으며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보리는 머지잖아 이삭을 피워 올릴 것이고, 청보리밭은 봄바람에 이리저리 쓸리는 장관을 연출할 것이다. 이어 육체미하는 청년의 알통같이 토실토실한 보리알을 매달 것이다.

(전략) 너를 보면 눈부셔 /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중략) /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 <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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