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암 투병으로 얻은‘치유의 길’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이야기 되는 선암사 길, 그 초입에‘백운쉼터, 조계산힐링센터’가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강석진 원장은 간단치 않은 운명의 소유자다. 그의 직계가족 아홉 명 중 여섯이 암에 걸렸고 그 자신도 20년 전 담낭암과 담도암으로 투병생활을 했다. 온 가족이 암과 싸우다보니 암에 관한한 도사가 되었다. 투병 중에 가족과 주변 사람들 중 몇 명은 죽고, 몇 명은 살아남았다. 두 번의 암투병과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살아남은 이들의 공통점을 보았다.
그는 암에서 회복되자 이내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불량식품도 가리지 않고 먹었다. 예외 없이 몸은 나빠졌고 급기야 한 블럭 건너에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때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요양원이 소개되었다. 그곳에 가면 살 것 같아 요양원 생활도 했다.
그러던 중 2005년 형님 두 분이 동시에 암에 걸렸다. 머리가 멍해졌다. 도대체 왜 암이 우리 형제를 앗아가는가? 절망감으로 시작된 자포자기는 이내 분노로 이어졌다. 살아갈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먹고 살 궁리는 해야 했다. 요양원에서 회복된 경험이 있어 형님을 요양시설에 모시려고 알아보았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런 저런 조건을 고려해서 알아보던 중‘차라리 내가 요양원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상의를 하고 짐을 꾸려 백운산에 있는 산장을 임대해 이사를 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 또 다른 삶의 길을 찾아가는데 디딤돌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요양원은 쉽게 운영되지 않았다. 살기위해 입소한 환자들이 죽어나갔다. 환자들이 죽는 것을 보는 일은 암담했다. 6개월 만에 두 손 두 발 들고 요양원 문을 닫으려 했다. 그 때 아내가“모든 것을 정리하고 산속으로 들어왔는데 조금 더 참고 해 보자”고 설득했다.
그 와중에 한 잡지사 기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가족 중 여섯 명이 암에 걸리고 두 번의 암 투병으로 살아남은 사례는 남들이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지쳐서 깊은 생각 없이 묻는 말에 답변했다. 그런데 잡지에 기사가 난 후 전국에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점점 환자들이 늘었다. 돈을 좀 번다는 소문이 나자 그 옆에도 비슷한 시설이 생겨났다. 시설 간 사소한 갈등이 생겼다. 그게 싫어 선암사 입구로 자리를 옮겨왔다.
산속 깊은 곳에서는 환자들이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데 이곳에서는 환자들이 밝게 지낸다. 인터뷰를 하는 중, 한껏 멋스럽게 차려입은 환자 한 분이 패션쇼를 하더니 “내가 무슨 환자야?”농담을 던지며 산책을 나선다. 이곳으로 옮기고 나니 암환자 치유의 쉼터를 운영하는 그의 소박한 꿈은 이전과 다르게 좀 더 거대해졌다. 조계산 힐링센터 운영이 전남동부지역 시민들의 건강에 일조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천 주변에는 천혜의 선물이 많다. 순천만, 낙안읍성, 선암사. 이 주변을 잇는 아름다움은 힐링캠프를 운영하기에 딱 좋다.
그의 꿈은 머릿속으로 계산된 것이 아니다. 환자들과 함께 상사에 있는 황토찜질방으로, 갈대밭이 있는 순천만으로, 낙안읍성 부근으로, 걷고 냉온욕을 하러 돌아다니며 알아차린 것이다. 그 길을 오가며 환자들이 부쩍 즐거워하고 그 자신도 행복감이 부푸는 경험을 하며 자연스럽게 그려진 그림이다. 조계산 힐링센터에서 요가를 하고 좋은 음식도 먹으며 여유롭게 즐기는 여행은 건강한 삶으로 이어질 내용을 제공한다. 그는 대기업 수련회나, 동창회 모임도 건강을 찾고 치유되는 이런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순천을 풍요롭게 하는 일 같아 응원을 보내고 싶다.
[조합원 탐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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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숙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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