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영된 드라마 ‘킬미 힐미’의 젊은층 시청률이 높았다고 한다. 어릴 때 학대받은 고통을 기억에서 지우거나 회피하기 위해 상황 상황마다 또 다른 인격의 자기로 변하는 다중인격자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이다. 재벌가의 이복형제, 출생의 비밀, 삼각 사각의 애정관계 등 식상한 설정으로 재미를 좇은 그저 그런 드라마이긴 했지만 제목에 눈길이 가서 줄거리를 챙겨들었다. 죽음과 치유!

봉건시대 영토전쟁도 세계대전시대도 다 지나고 21세기는 총성 없는 경제전쟁시대일 것이라고들 했는데, 지구촌 곳곳은 여전히 총성이 요란하고 죽음의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총성이 없는 곳에서는 무너지고, 터지고, 갈라지고, 가라앉는 사고로 죽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예 세월호 참사 1주기가 고통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내겠노라고, 그래서 대한민국은 세월호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눈물로 다짐했던 대통령의 약속은 별스럽게 실천되고 있다.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은 이제 완전한 사고불감증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아주 황당한 사유로 생떼 같은 목숨 300 명이 한순간에 죽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웬 호들갑? 하는 사회분위기가 그것이다.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국민을 종북으로 몰고, 간신히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세금도둑 운운하며 옭아매려는 집권세력의 행태는 차라리 총질보다 더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불과 4년 전 공고한 사회 안전시스템을 자랑하는 일본에서 후쿠시마원전이 터져 전 세계가 공황에 빠졌음에도 월성 핵발전소의 수명을 억지로 연장시키고, 고리 핵발전소도 그렇게 하려고 갖은 애를 다 쓰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이다.

청소년수련시설이나 공공시설이 어김없이 무너지고 불타고 사람들은 죽어간다. 이제 국민들은 분노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려니 한다. 나와 내 가족만이라도 안전한 것이 다행이라 여기며 조심조심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힐링’이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너 나 없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TV프로그램에서도, 저명강사 강의로, 종교에서도 힐링이 넘쳐난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도움을 받았을까. 그리고 치유가 되었을까. 그래서 행복해졌을까. 정부가 데이터를 내놓지 않는 것을 보니 별로인 모양이다.

너무 아픈 고통을 잊기 위해 드라마 주인공은 거친 반항아로,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로, 염세 자살 시도자로, 심지어 철부지 소녀로 인격을 바꿔가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회피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는 고통이라 깨닫고, 기억과 정면으로 맞서 자기 정체성을 되찾는 도전에 나선다. 이 도전은 극한의 고통과 희생, 파괴를 수반하지만 참 삶을 찾으려면 결국 이겨내야 할 치유의 과정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고통과 그로 인해 무기력에 빠진 지금의 우리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맞섬이지 않을까. 진실을 파묻으려하고 아닌 것을 강요하고 적당히 눈 감고 살아가라고 회유하는, 그래서 한줌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호도하는 권력에 맞서 부정한 작태를 집어치우라고 외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힐링이 아닐까?

304명의 희생자, 그로 인해 상처받은 우리 국민의 세월호 사고 1주기 이후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무기력한 방관 속에 죽임에 순응하는 세상일지, 건강한 저항으로 생동감이 넘치는 세상일지. 그 선택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있음을 드라마는 말해주고 있다.
 

▲ 이상훈
여수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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