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섭
 순천동산여중 교장
생명의 약동을 느끼는 계절이다. 봄의 생기처럼 아름답게 피어날 아이들의 꿈을 생각해 본다.

미국에서 흑인이나 히스패닉계가 많이 사는 곳은 교육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벽을 넘은 학교가 있다. 데모크라시 프렙이다. 이 학교 학생은 80%가 흑인, 20%는 히스패닉이다. 10명 중 8명이 가난한 편부모 밑에서 자랐다. 이 학교는 지리적으로 맨해튼의 컬럼비아대학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다. 하지만 졸업생 가운데 컬럼비아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데모크라시 프렙에서는 아이비리그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이란 단어조차 생소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데모크라시 프렙이 얼마 전 뉴욕주 공립학교 중 최고의 성적을 냈다. 거기에다 컬럼비아뿐 아니라 하버드·예일·프린스턴 등 아이비리그는 물론이고 한국 연세대 깃발까지 빼곡히 달았다. 우리나라의 고3에 해당하는 이 학교 예비 12학년 학생들에게 대학 진학이 더 이상 꿈같은 동화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를 했던 교장의 한국식 교육 실험으로 할렘의 기적을 일궈냈다. 학교 담장은 두 길 높이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어, 안에선 희망이 자라지만 밖엔 절망뿐이었던 학교이다. 가난과 오금이 저려오는 폭력이 일상인 곳에서 이 곳을 탈출하게 해 줄 유일한 동아줄이 바로 학교요 성적이었다고 한다. 앤드루 교장은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를 했던 경험으로 할렘의 아이들에게 한국어, 봉산 탈춤, 태권도를 가르쳤단다.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국의 교장을 뛰어 넘는 수준 아닌가? 그러나 그는 단순히 이런 교육만 한 게 아니라 ‘나도 대학이란 곳에 갈 수도 있다’는 꿈, ‘대학에 가면 이 지긋지긋한 절망의 덫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을 심은 것이다. 아이들 가슴 속에 꿈과 희망이 뿌리를 내리니 기적의 나무는 스스로 쑥쑥 자랐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이 무엇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어느 틈엔가 우리 아이들은 그런 절실함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피눈물을 쏟으며 벗어나고 싶은 가난도, 생각만 해도 눈물 나게 하는 고향의 가난한 부모님도 이젠 과거의 추억담이 되었다. 그런 아이들에게 꿈은 대학 가서나 꾸고 ‘닥치고 수능 성적부터 올리라’고 몰아대니 글자가 교실 허공을 둥둥 떠다니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 아닐까. 지금도 늦지 않다. 학교 성적은 아무렇게나 받아도 된다고 이야기 하지 말자. 세상은 아직도 진정한 성적을 가진 자를 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입학사정관제’라는 틀 안에서 학생 개개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 할렘의 아이들에겐 내로라하는 강남 학원도, 족집게 과외 선생님도, 엄마의 치맛바람도 없었다. 다만 아이들 가슴 속에 선생님들이 꿈과 희망이란 씨앗을 뿌려주니 스스로 싹을 틔워나갔다.

우리가 교육에 대한 방향과 열정을 모으지 못하면서 상당수의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학교 밖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닌지 가슴에 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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