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튀기지 마세요』 박문희 엮음, 고슴도치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던진 충격 중 하나는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을 충실하게 따른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급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안내하거나 지시하거나 가르치는 ‘말’을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말’이 힘을 갖지 못하는 사회를 살아야 하다니 정말 아득하다. ‘말’이 힘을 갖지 못하는 사회는 곧 폭력 사회이다. 말이 힘을 잃으면 말을 대신해서 신뢰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서류를 만들고 보증인을 세우고 공증을 받는 이런 약속 역시나 말로 하는 약속을 전제로 한다. 말이 힘을 잃으면 약속이 의미가 없다. 시간이 지난 그 때에 힘센 사람의 말이 곧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말이 힘을 잃는다는 것은 곧 교육의 위기다. 교육은 의미를 공유하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가르치려는 사람의 말이 가르침을 받는 사람에게서 반응이 일어나야만 비로소 교육이 이루어진다. 제목부터 아주 당돌한 『침 튀기지 마세요』는 유치원 아이들의 마주 이야기를 쓴 책인데 아이들의 이야기가 부모의 가슴을 뜨끔하게 한다.

“엄마! 안 사줘도 되니까요, 한 번 보기만 하세요”
“너 또 인형 사 달라고 하면 매 맞을 줄 알아! 알았어?”
“근데 엄마! 제 얼굴에 침 튀기지 마세요”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와 부모의 대화다. 아이는 안 사줘도 되니까 엄마에게 한 번 보기만 하란다. 엄마가 어떻게 반응할지 아주 잘 아는 아이다. 그런데 엄마에게 왜 보라고 했는지 궁금하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는지 혹은 엄마가 보고서 얼마나 멋진지 알면 사줄 거라고 생각했을까?

 
중학생인 아들은 이 글을 보고서 단번에 “사고 싶다는 얘기네”’라고 말했다. 어릴 때 자기도 그런 마음이었다면서.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참 단호하다. 조금의 여지도 없다. 사 줄 수 없다면 아이의 기대를 애초에 꺾어버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모르지만, 매번 일말의 여지도 없고 희망도 없다면 삶이 얼마나 팍팍하겠는가?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루고 싶은 꿈을 갖고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애초에 그런 마음조차 가지지 말라니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만약 아이가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다면 엄마의 대답에 그런 마음을 쏙 접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엄마의 냉담하고 위협적인 반응에 굴하지 않고 아이는 “근데 엄마! 제 얼굴에 침 튀기지 마세요” 라고 한다. 이런 당돌함이 엄마의 위협을 덜 폭력적이게 만든다. 상대를 겁먹게 해서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폭력이라고 한다면, 당돌하게 하고 싶은 말을 덧붙이는 아이 덕분에 부모의 말은 폭력에서 거친 대화로 격상되었다. 물론 침 튀기지 마세요라는 아이의 말을 회피하거나 삼켜버리거나 무시하지 않고 듣고 반응할 때만이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에도 힘이 있다. “목하고 엉덩이 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 목이 아프면, 목에다 주사를 맞아야 되는 것 아니야. 목하고 엉덩이하고 상관이 없으면, 목이 아픈데, 왜 엉덩이에다 주사를 맞는 것이야?”

“우리 형아는요, 참 이상해요. 자기가 라면 끓여놓고요 할머니보고요 잘 먹겠습니다. 하거든요”

아이들은 어떤 상황을 보고 듣고 겪으면서 생각하고 궁금해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궁금해 하고 질문한다. 그런데 이런 궁금함을 어른들은 그저 귀여운 표현이라고 웃어넘기고 대화로 이어가지 않는다. 아이의 말을 ‘말’로 듣지 않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아이의 말을 자세히 오래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그 말의 의미를 느껴보자. 그럴 때 비로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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