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두규
전라남도 청소년미래재단 원장
3월이다. 봄꽃 소식과 꽃샘추위가 뒤섞여도 봄은 어김없이 밀려온다. 하지만 사람과 사회에서 기다리는 봄소식은 순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3월 3일 한 방송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회, 왜?”라는 100분 토론이 있었고, 3월 13일 ‘섬진강시’ 입법 간담회 소식이 뒤따르자 몇 가지 걱정이 깊어진다.

방송 토론에서 토론자들은 대체로 분노의 원인과 예방은 개인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로 나눠질 수 없으므로 두 차원을 동시에 바라보며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는 방향이었다. 한 토론자는 광화문과 여의도의 관료와 정치인, 방송의 시사토론자들이 분노를 부추기는 사람들로서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동서통합지대 섬진강시 논의도 그렇지 않을까?

사람들의 정서장애는 불안, 분노, 우울, 수치심, 죄책감 등이다. 이 중 갈등관계 정서인 분노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다. 사랑과 증오는 하나의 감정이 뒤바뀌는 현상이기에, 분노도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며, 관계의 재조정 기능을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갈등관계를 잘 풀지 못하는 문화적 특성을 보인다. 최근 들어서 분노를 참지 못하여 사건과 범죄를 일으키는 사례가 자주 보도된다. 욱하는 성미, 성숙하지 못한 개인의 일탈행동 때문에 범죄나 가족 동반 자살 등이 일어난다고 하지만, 그 배경에는 분명 사회적 문제와 책임이 크다. 병든 사회가 병든 인간을 만든다. 프롬과 매슬로우 같은 학자들은 사회적 동기의 좌절을 정신적인 병의 기본 원인으로 여겼다.

에리히 프롬은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넘어서기 위해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 사회를 그렸다. 그는 새로운 사회를 위해 수동적인 ‘관객 민주주의’에서 능동적인 ‘참여 민주주의’로 바꾸고, 고도의 지방 분권화와 보편적 생계보장을 제안했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병폐를 없애기 위해 ‘대면 집단’을 중심으로 지방권력을 구성하자고 했다. 대면 집단은 마을 회의나 500명 정도로 구성된 소집단이며, 이에 기초한 권력 구성은 고도의 지방분권화를 의미한다.

사회심리학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중앙집권이 심한 관객 민주주의다. 정부는 조세권, 경찰과 사법권, 입법권 등을 지방으로 넘기려는 분권 의지가 전혀 없다. 지방분권보다는 지방을 중앙정부에 예속시키려는 행정개편 추진으로 여러 지역민을 분노하게 했다. 그러므로 지방행정 개편은 지방분권과 2단계 자치행정을 보장하는 원칙이 서야 한다.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통일을 지향하려면 광주와 전남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연방제 개헌까지 필요하다. 정치적 목적과 효율성 논리만으로 섬진강시를 논하는 것은 섣부르기 짝이 없다.

호남과 영남을 차별하지 않는 정치와 행정을 하면 되지, 동서통합지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리고 행정 개편을 말하기 전에 이웃한 시·군 사이의 협력적인 관계부터 이뤄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2008년 순천대 공과대 광양캠퍼스 신설과 관련해서 당시의 여론은 찬반이 비등했지만 반대의 광풍을 일으킨 세력들이 있었고, 이어서 광양·순천·여수 3개시를 통합하자고 모순되게 나서면서 지역 갈등만 부추겼다. 요즈음 LF아울렛이 광양읍에 들어서는 것에 대해 이해당사자인 상공인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해하지만, 순천의 행정과 정치 관련자들이 반대에 나선 꼴은 어이가 없다. 

이웃한 지역민의 분노를 이용하여 반사이익을 얻으려고 얼굴 내밀기보다, 먼 앞날을 보며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회활동을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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