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학섭
대대교회 목사
약 5년 전의 일로 기억한다.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에서 노후준비를 위한 공개세미나를 열었는데, 대성황이었다. 이미 퇴직한 사람이나 퇴직을 눈앞에 둔 사람에게 ‘노후준비’라는 제목이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었겠는가? 직장마다 퇴직 연령이 다르긴 하지만 60~65세 전후로 직장생활이 끝난다. 하지만 일을 그만 두기에 남은 에너지가 너무 많은 시기다. 그리고 100세 시대를 염두에 두면 남은 세월이 30~40년이다. 은퇴 후의 시간만 해도 인생 전체의 1/3을 훌쩍 넘긴다. 이렇게 긴 시간을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공교롭게도 2주 전 은퇴목회자의 모임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뒷자리에 앉아 연세 지긋한 선배들을 지켜보며 10년 후 나의 모습을 미리 보았고, 은퇴 시간이 점차 내게 다가오고 있다는 절박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백발이 성성하고 거동이 느릿느릿해진 선배들은 현역으로 일하는 나를 많이 부러워하셨다. 마치 ‘나도 한 때 자네처럼 활동하던 때가 있었는데’라는 눈빛이 역력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은막에서 전설적인 미모를 가졌던 분들이 어쩌다 TV 브라운관에 나올 때 흠칫 놀라곤 한다. 그리 곱고 예쁘던 분들이 이렇게까지 늙을 수 있는가? 어찌 늙음이 그들만의 일이겠는가? 뭐가 그리 급한지 해가 다르게 인생의 단풍은 짙어만 간다. 흰머리는 기본이고, 탈모에 주름살까지 깊어가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다. 노화가 나의 인생을 거침없이 점령해가고 있지만 막아낼 힘이 없다.

그렇다고 푸념만 하고 있을 텐가? 노년의 삶을 의미 있게 해주는 일은 누가 대신해 주지 않는다. 국가도 나의 노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결국 자기 인생의 책임은 스스로의 몫이다. 노년 준비는 자신이 하되 노년이 임박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젊을 때부터 해야 한다. 젊은 시절 노년에 대한 준비가 없으면 노년의 삶도 보장되지 않는다. 아무 준비 없이 30~40년 무료하게 보내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죄악의 수준이다. 눈치 보며 사는 노년이 될 지, 당당한 노년이 될 지는 자신의 준비에 달렸다. 

빅토르 위고는 “젊음은 아름답지만 노년은 찬란하다. 청년은 불을 보고 뛰어 들지만 나이든 사람은 그 불 속에서 빛을 본다”고 했다. 성경 잠언에는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했다. 준비된 노년은 인생의 절정의 순간이 될 수 있다. 젊을 때부터 착실하게 준비하여 노년을 맞이한다면 지는 해처럼 온 하늘과 땅을 붉게 물들이며, 노년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게 될 것이다. 도리어 백발은 인생의 영광스러운 훈장이 될 것이다. 젊을 때 노년을 준비한 사람은 결코 서럽지 않을 노후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건강을 유지하고, 경제적 여유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 것이다. 이미 은퇴를 경험한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수입과 연결된 일이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지라도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봉사단체에 가입하면 일거리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취미생활이 노년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채소나 화초를 길러 가족들의 반찬거리를 제공하는 일도 좋다. 한 가지 정도 악기를 미리 배워두면 심심치 않은 노년이 될 것이다. 또 약해져가는 마음을 지탱할 정신적 자산이 있어야 한다. 40년간 돈과 권력을 누리며 찬란한 삶을 살았던 솔로몬왕은 노년에 이르러 이렇게 말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