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 짱 거북이 트랑퀼라』 미하엘 엔데 글 / 만프레드 쉴뤼터 그림 / 보물창고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제목에서부터 이미 결론은 나와 있었다. 끈기짱! 거북이라니. 느림보의 명사 거북이에게 붙은 이름이니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처럼 느리지만 끈기 있는 우리들의 주인공 ‘트랑퀼라’가 성공할게 틀림없는 뻔한 이야기로 짐작이 간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들 줄 아는 작가 미하엘 엔데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 기름나무 아래 살고 있는 거북이 트랑퀼라는 ‘몸이 크건 작건, 늙었건 어리건, 뚱뚱하건 가냘프건, 사는 곳이 물이건 땅이건 동물이란 동물은 모두 초대’한다는 동물 나라 대왕 레오 28세의 결혼식 소식을 듣게 된다. 하루 종일 잠도 안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결심한 트랑퀼라는 레오를 위한 선물도 준비하고 느릿느릿 한 발짝씩 사자굴을 향해 출발한다. 그러나 무모해 보이는 발걸음에 동물들은 용기를 주기는커녕 “그렇게 부지런히 가다가 결혼식이 열리기도 전에, 너무 일찍 도착하지나 마라.”라는 비아냥거림에 한심하다는 핀잔을 하기 일쑤다. 거기에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일까지 엎친 데 덮치는 일이 일어나지만, 트랑퀼라는 기름나무 아래서 결심한대로 ‘한 발짝씩, 한 발짝씩’ 갈 수 있다는 신념으로 다시 길을 떠난다.

드디어 고지가 눈 앞. 사자 대왕이 다스리는 숲 속 나라 고위관리인 몽당다리 도마뱀을 만난 트랑퀼라. 사자왕 레오 28세가 뾰족 이빨 호랑이 제불론과의 갑작스런 결투로 결혼식이 미뤄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거란 더 큰 기대에 신이 난 트랑퀼라는 더러운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초라한 모습으로 거기까지 어떻게 가겠냐며 어서 돌아가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또 다시 기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눈앞에 닥친 현실은 너무 어이없다. 바윗돌이 많은 곳을 지나가던 트랑퀼라는 상복을 입고 있는 까마귀떼들에게서 레오 28세가 며칠 전에 심한 부상을 입고 땅에 묻혔으니, 이곳에서 대왕의 죽음을 애도하던가 집으로 돌아가라는 충고를 듣는다. 하지만 애석해하던 트랑퀼라는 이미 결심했으니 가야한다며 다시 사자굴을 향해서 길을 떠난다.

 
결국, 다시 나무와 돌을 지나고, 모래와 숲을 지나 밤이나 낮이나 계속 기어가던 트랑퀼라 앞에 꽃이 활짝 핀 나무들이 가득한 숲이 펼쳐진다. 동물들이 모두 모여 무언가 행복한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있는 숲 한가운데 꽃밭에서는 곧 동물들의 ‘새 왕 레오 29세’의 결혼식이 열릴 예정이다. 바로 그 때, 갈기가 태양처럼 빛나는 멋진 젊은 사자와 그 곁의 아름다운 암사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축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축하객들 속에서 좀 피곤해 보이기는 하지만 무척 행복해하는 거북이 트랑퀼라가 말한다. “거봐! 내가 제 시간에 도착할 거라고 했잖아!”

어떤 일이 필요하다거나 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다. 그러나 그 일을 시작하기 위해 결단하고 실행해 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누구는 너무 멀다는 핑계, 내가 하기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열등감에서 비롯되는 빠른 포기, 거기에 잘못된 판단으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만나기도 한다. 또 시작하기 전에 여러 가지 앞선 생각들로 시작이 너무 어려운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생각만 하다가 이미 때를 놓쳐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처음 가졌던 결심. 그 첫 마음을 기억하고 다시 힘을 내 다시 길을 걷는다는 것은 더욱이 그렇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결심을 하고 길을 떠나 어려운 과정을 살아내고 있는 트랑퀼라에게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그러나 이 책을 덮으면서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트랑퀼라는 짧고 튼튼한 다리를 가진 자기 확신이 있으니 길을 떠난다. 길 위에서 트랑퀼라의 재빠름을 인정해 주며 같이 살자는 달팽이의 달콤한 유혹에도,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목표를 향한다. 바느질쟁이 거미 파티마, 미끈미끈 달팽이 쉐헤레자데, 몽당다리 도마뱀 짜카리아스, 그리고 에취를 포함한 까마귀들도 만난다. 트랑퀼라가 독고다이처럼 혼자 길을 가지 않고 친구들을 설득해가며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함께 했더라면 지나 온 길에 만났던 친구들과 더불어 더 큰 축제가 되지 않았을까?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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