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 / 에우게니 M. 라쵸프 그림 / 이영준 역 / 한림출판사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작가는 자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세상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작가의 눈이 어디에 무엇을 향해 있는지에 따라 작품에 녹아 들어간 알맹이가 다른 이유다. 그러나 문학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일방적인 가르침 때문이 아니다. 작가의 사상이 예술적으로 형상화되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깊은 울림을 통해 현실을 바탕으로 살아나갈 방향을 제시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게 만드는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수없이 많은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현재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옛이야기의 작가는 잘나고 못난 것 따로 없는 평범한 우리 이웃이다. 그들의 좌절과 슬픔, 그것을 견뎌 낼 수 있었던 열망을 담아 더해지고 빼지며 만들어진 이야기는 더없이 훌륭한 문학의 힘을 갖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정제된 이야기 고유의 힘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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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은 단순하면서도 긴 여운을 주는 그림책이다. 우크라이나 민화인 이 책의 그림 속에는 이 이야기를 향유하던 사람의 모습과 소망이 담겨 있다. “어린 독자를 이해하고 애정을 갖는 것, 그리고 그림을 그릴 문학 작품을 존중하며, 또한 그것의 발전과 보완을 위해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화가의 주요 과제”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작가는 그림을 통해 우리를 안내 한다. 거기에 더해 평범한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민담의 특성상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등을 바탕으로 하겠지만, 지역과 세대를 넘어 선 보편적인 가치와 즐거움을 보여준다.

눈발이 날리는 추운 겨울. 할아버지가 숲 속을 걷다가 장갑 한 짝을 떨어뜨린 채 그냥 가버린다. 그러자, (……먹을 것을 찾던, 잠잘 곳을 찾던, 친구를 찾던, 그냥 지나가던……) 먹보 생쥐, 팔짝팔짝 개구리, 빠른 발 토끼, 멋쟁이 여우, 잿빛 늑대, 송곳니 멧돼지, 느림보 곰이 차례대로 장갑을 발견한다. 그리고 모두들 장갑 속에 들어가 살고 싶어 한다.

▲ 사진출처: http://www.openkid.co.kr

장갑을 누가 먼저 차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먼저 들어가 살고 있던 작은 동물들은 ‘장갑집’을 나만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좁아터질 듯 부대끼면서도 한 박자 쉬는 여유를 갖고 있다. 그리고 새로 등장한 손님에게 ‘장갑집’ 한 켠을 마련해 주는 너그러움을 지녔다. 찾아 온 손님의 자세 또한 놀랍다. 앞 선 동물들보다 덩치도 크고 힘이 세지만, 위협하지 않고 공손한 자세로 ‘나도 들어갈게’하고 묻는다. 곧 터질 듯한 장갑집 속에서 동물들은 ‘할 수 없지. 그럼 한 쪽 구석으로 들어오세요’라고 답한다. 불편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감수하겠다는 의지다. 집이 주인을 닮듯, 마음 넓은 동물들이 사는 장갑은 참 커다랗다. 아니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쬐그만 먹보 생쥐부터 어마어마한 곰까지 들어가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을 만큼. 터도 닦고, 널찍한 마루도 생기고, 짚풀로 지붕도 만든다. 부엌도 생겼는지 굴뚝도 생기고, 누가 오면 알릴 수 있는 초인종도 생기고, 밖을 볼 수 있는 창문도 생겼다.

군더더기 없는 글, 등장하는 동물들의 특징, 옷차림을 통해 흥미와 재미를 더해가는 점층법, 장갑이 터지진 않을까하는 긴장감을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경쟁구조에서 살아남아야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그럴 때 행복할 수 있다는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에게 ‘더불어 산다는 것’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행복한 삶, 옳은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이다’는 명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행복해 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고서 얻게 되는 기쁨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아무 것도 아니었던 떨어진 장갑 한 짝이 동물 친구들의 아늑한 집이 되었다. 넓어진 것은 좁디좁은 장갑집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들의 풍요로워진 마음이고 삶이 아닐까?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이면서 몸과 마음의 불편함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지고 넉넉해지면 좋겠다.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성실함이 아니라, 이 세계가 가진 한계를 볼 수 있는 현명함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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