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훈
예술공간 돈키호테
기획연구팀장
“안녕히 잘들 지내십니까?”

새해 안부를 묻는다. 언제부터인가 설날의 풍경은 교통상황으로 시작되고 끝난다. 꽉 막힌 고속도로의 정체가 언제 풀릴지,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를 귀향길에 귀성길을 걱정한다.

마을 입구부터 차들이 빼곡히 줄지어 서 있고, 고향방문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왔다 가는 것일까?

“순천은 어때요?”

어느 순간 순천의 안부를 묻는다. 순천에 살고 있는 부모에게, 형제에게, 친구에게 순천의 근황을 묻는다. 스마트폰 게임에 몰입해 있는 어린 조카들을 보면서 얘들을 데리고 산책 겸 순천 구경 시켜줄까? 잠시 궁리해본다.

죽도봉 공원 팔각정에 올라 순천의 안부를 묻곤 했다. 죽도봉은 어린 시절 나의 놀이터였다. 곳곳에 옛 추억이 서려있다. 아마도 순천 사람이면 죽도봉에서의 추억 하나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학교 소풍을 갈 때는 잔디가 깔려 있다는 이유로 공동묘지에서 뛰어 놀던 기억, 시민의 날에는 폭죽을 죽도봉 팔각정 아래서 쏘아 올려 그 불꽃의 모양이며 소리에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4월 식목일에는 단짝 친구와 웃장에서 작은 묘목 하나를 사서 현충탑 부근에 심어 놓고 며칠을 물 주러 다녔지만 얼마 지나지도 않아 잊혀졌던 기억, 5월 어린이날에 사촌과 함께 연자루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시내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있다. 공휴일이면 어른들은 여기 저기 무리지어 장구가락에 춤추며 구성진 유행가를 떼창으로 부르며 술과 음식을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연인들은 대숲 곳곳에 놓인 시멘트 벤치 중 인적이 뜸한 명당을 차지하고서 농밀한 데이트를 즐기다 숲에서 불쑥 튀어나온 아이들과 마주쳐 서로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동네 형들의 일탈 장소였던 죽도봉에서 달밤에 팔각정에 올라 고래고래 야호를 연거푸 질러대고 도망치던 엉뚱한 기억도 새롭다. 죽도봉 아래의 기찻길, 순천역보다 기차를 타고 내리던 사람들이 많았던 동순천역, 죽도봉 아래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지나치는 이수중, 동산여중, 공고, 금당고 학생들로 빼곡했던 통학버스와 기찻길 울타리에 울창하게 피어있던 붉은 장미들, 대보름 동천가에서 썰매타기와 쥐불놀이를 하던 기억도 난다.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친구, 가족과 찍었던 옛 사진은 어디 있을까? 큰 나무 옆에 심었던 묘목은 잘 자라고 있을까? 구성진 장구가락을 뽐냈던 그 사람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끔 궁금해진다.

1년에 한두 번 볼까말까 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둘러앉아 부모님과는 60-70년대 순천의 모습을, 친구들과는 80-90년대 순천을 함께 회상해 본다. 기억의 파편을 퍼즐 맞추듯 맞추다보면 어느새 지금의 순천이 얼마나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게 된다. 반면 변하지 않은 것도 많다. 변하고 변하지 않은 것을 놓고 왜 변했는지, 왜 변하지 않았는지 알아내는 것도 재밌다. 바뀌어야 할 것,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 세계관을 알 수 있다. 서로 상이한 가치관, 세계관으로 인해 때로는 대화가 중단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대화를 어떤 식으로든지 지속할 필요가 있다. 

최근 도시재생이 지역의 큰 이슈이다. 앞으로 원도심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순천 곳곳을 좀 더 알아가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크고 작은 토론회나 발표회, 구술 및 기록화 작업이 활성화될 필요도 있다. 개인의 추억, 사진을 끄집어내고, 그것이 모아지면 순천 구석구석을 이해할 수 있는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