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어제 새벽의 그 바람이 아니었다. 빗발치는 눈은 호기롭게 맞설 수 있지만, 귓볼에 스치는 찬바람은 모자를 눌러쓰게 했다. 518 망월동 묘지에서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을 뒤따라 걷는다. 지난 1월 14일 ‘416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원회’가 팽목항에서 희생자 분향소를 열었다. 유가족들은 “잊으려고 해도, 떠나라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을 우리는 차라리 직면할 것”이라며, 25일 안산에서부터 걸어 내려온 지 14일째다.

무등도서관 앞에서 많은 시민이 결합했다. 별량중 학부모들도 왔다. 누가 준비했는지도 모르는 빵과 차를 마시고 다시 걷는다. 가로등에 걸린 훼손되지 않은 노란 현수막의 마음들을 읽으며, 차도 위를 걸었다. 작지 않은 노란 리본을 가로수 가지에 묶는 이들은, 꽁꽁 얼어 벌겋게 된 손가락을 개의치 않았다. 광주역 못 미쳐 새누리당 전남도당을 호위하는 경찰을 보고 민중의 지팡이인가, 정권의 지팡이인가 ‘고민’하는데 왼쪽 정강이뼈 옆이 아프기 시작한다. 고작 반의 반나절 걸었을 뿐인데 삐그덕거리는 내 몸을, 보름을 걸어온 유가족들의 뒷통수가 쳐다보는 것 같아 움찔했다.

옛 전남도청 분수대에서 광주 상주모임에서 준비한 주먹밥을 받았다. 제대로 익은 김치, 아몬드 멸치볶음, 간이 딱 맞는 시금치 나물이 내 입속에서 버물어질 때, 많은 사람의 작은 몸짓도 서로 버물어져 식판 위로 떨어지는 함박눈만큼 아름다웠다. 노련한 사회자와 준비되지 않은 공연도 맞춤한 듯 잘 어울렸다. 젬베를 연주하는 래미학교 학생들의 언 손가락은 안타까웠지만, 그 무거운 악기보다 묵직한 울림은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기에 충분했다.

 
강강수월래에 이어 우리들의 맞붙은 등을 밟고 누르는 아이들 발의 감촉을 느낀다. 그래 우리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라. 어린이도서연구회의 보이지 않는 봉사로 주먹밥은 달콤했으며, 일반노조 어머니들의 유일한 조직적 참가는 행렬의 끝을 단단히 매듭지었고, 휠체어를 타고 자전거를 끌고 어린이를 안고 걷는 모습들은 서로 어우러졌다.

518을 경험한 최철용원장은 ‘광주는 다르다’고 힘주어 말한다. 승용차 창문을 열고 ‘힘내세요’라는 시민, 봉고차에서 손을 흔드는 할아버지, 긴 행렬의 교통차단에 경적 소리 한 번 없는 운전자들, 서서 박수 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 뿌듯한가 보다. 다시 왔던 길로 택시를 타고 오는데 숙영낭자 하는 말 “우리, 참 많이 걸었네요.” 그 말을 들으며 앞으로 팽목항까지 걸어갈 길이 떠올랐다. 그 이후 유가족들이 살아갈 앞길이 눈앞에 그려져 먹먹하다.

헤어지면서 한 엄마가 건네준 노란리본을 받고 손을 잡았다. 작은 이 노란리본. 엄마들 모여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며 자르고 붙이고 끼웠을 몸짓들을 떠올린다. 그렇게 모여, 모여서 도란도란 살아가시길 기원한다. 죽을 때까지 결코 잊을 수 없는 416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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