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훈
여수YMCA 사무총장
순천 사람이 그렇게 부러웠다. 서울에서 여수까지 기차로 여섯 시간 걸리던 시절, 순천역에서 내리기만 해도 살 것 같았다. 그런데 고속철이 생기고 세 시간대로 줄더니 노선까지 변경되어 이제 두 시간대로 준다니 절로 입이 벌어진다.

이제 서울에서 회의나 경조사가 생겨도 이리저리 고민 없이 훌쩍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서울 사는 친지더러 회 한번 먹게 다녀가라는 인사도 부담 없이 건넬 수 있을 것이다. 한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더니, 누군가 그리 좋아할 것만도 아니라고 말했다. 이른바 빨대효과라는 것이 있어, 사람과 자원이 서울로 빠져나가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이다. 듣고 보니 가슴이 철렁해진다.

인구 감소로 일어나는 폐해를 세면 열 손가락이 부족하다. 그 중에서도 교육과 의료 환경이 열악해지는 것이 치명적이다. 향수할 문화 기반이 박해지는 것도 무시하지 못한다. 본질적으로 자립적인 경제구조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 자치고, 자율이고, 자생이고 어림없어진다.

동양 최대의 석유화학산단과 굴지의 제철소가 자리 잡고 있지만, 그로 인해 동부권 주민들이 그다지 행복해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지역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적 이익은 본사가 있는 서울로 가고, 지역에 남는 것은 오염과 안전사고뿐이기 때문이다.

그럼 지역의 것은 무엇일까? 고흥만, 순천만, 여자만, 가막만, 광양만으로 이어지는 그것이다. 지리산,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그것이다. 점점이 뿌려져 신비를 더하는 섬들이 그것이다. 그 굽이굽이에 스며있는 역사와 전설, 노래와 춤, 사람 사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거기에 세계엑스포의 유산이 남아있고, 매머드 정원이 활착되어가고 있다. 매화꽃처럼 맑고 깊은 숲과 산줄기가 품어내는 옹골진 자연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것이다. 이것으로 우리가 서울로 가지 않아도 될 충분한 바탕을 만들어 낼 일이다.

이 정도면 ‘빨대’를 두려워할 것도 없다. 문제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내 것을 뺏길까봐 꽉 움켜쥔 것이 무엇인지 찬찬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혹시 아집인지, 구태인지, 타성에 젖어 익숙해진 정체(停滯)인지 살펴보고, 정말 그렇다면 얼른 놔 버려야하지 않을까? 내 집 앞만, 내 동네만, 내 지역만 앞세워서는 점차 고립되고 위축되어 결국 황폐해지고 말 것이다. 함께 살아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이 당연한 것을 그런데 쉽게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것을 보러 떠난다. 그것과 비교해봐야 내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떠나는 길이 매우 수월해지고 빨라진 것이 이번 고속철 노선 변경의 의미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자주 가서 더 많은 것을 접하고 요긴한 것을 가지고 내려오자. 그래서 우리 지역을 더욱 새롭고 활기찬 건강한 자치공동체로 만들자. 그리고 서울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와 많은 유익한 것을 내려놓고 갈 수 있게 하자. 그래서 우리 지역을 보다 풍성하고 아름답게 가꾸자.

이것은 전남동부 6개의 각 지자체가 따로여서는 이루기 요원한 과제이다. 각기 갖고 있는 장점과 힘을 모아 흡입력 있는 매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최소한 빨대 안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나로 몸집을 불려야하는 측면도 있다.

‘천리타향’이란 단어가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며, 중국과 일본의 뉴스를 챙겨봐야 하는 세상이다. 서울까지 두시간대 시대, 나쁘지 않은 긴장감에 얼핏 희망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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