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비치의‘휴마나이즈(humanize)’를 생각하며

▲ 박두규 시인
우리 인류는 근대를 진행하는 동안 꾸준히 과학기술의 발달을 이루었고 과학의 발달을 토대로 산업화가 이루어졌으며 산업화는 자본의 축적을 가져왔다. 그리고 21C에 들어선 지금은 우리 스스로도 놀랄만한 문명과 함께 이것들로 인해 역으로 꾸준히 자연은 침탈당해왔음을 본다. 그 결과 자연의 순환질서는 깨지기 시작했고 생명 본성을 거역하는 사회적 가치관이 형성되었으며 개인적 삶의 목표들이 부정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보며 세상살이의 우울함을 떨칠 수 없다. 이런 사유와 감상의 어느 지점에서 늘 만나는 질문 하나가 ‘인간의 욕망’이다. 인류사 속의 많은 종교와 사상들이 공통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거론해왔던 ‘인간의 욕망’은 이제 물질만능주의 사회로 진입한 오늘날 최고의 화두가 아닌가 싶다.  

나는 일단 이 ‘인간의 욕망’을 부추긴 과학과 자본의 결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에 속하지만 비치 선생의 ‘휴마나이즈(humanize)’와 ‘테크놀로지(technology)’에 관한 글을 읽으며 잠시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닥터 비치의 이 두 가지에 대한 개념을 간략히 말하면 이렇다.

‘문명이라는 것이 없었던 인류의 초기에는 자연 자체가 커다란 위협이었다. 휴마나이즈 라는 것은 그러한 환경에 대한 극복 요구로부터 서서히 일어났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테크놀로지란 인간으로서 위협이 없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것이며 테크놀로지의 역할은 가까운 미래에 대하여 세계를 휴마나이즈 (humanize)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휴마나이즈의 제일 기초가 되는 것은 인간의 삶에 대한 안전성이라는 테크놀로지라는 것이다.’

비치 선생의 과학에 대한 긍정적 인식에는 인간사회에 대한 공동체적 인식과 깊은 휴머니즘이 깔려있어서 감동이 있다. 닥터 비치의 생각에 시종일관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은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의 생명을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고 편안하고 유익하게 할 수 있느냐는 휴머니즘적 인식이다. 하지만 요즘 과학이 자본과 결탁하여 본격적으로 돈벌이에 나서며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현실을 볼 때 과학기술의 인간에 대한 기여는 비치 선생의 순박한 생각을 넘어 인간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인류 최고의 적은 과학도 아니고 자본도 아니고 과학과 자본의 결탁이 만들어낸 ‘인간의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문명과 산업자본문명으로 대표되는 근대문명의 진행과정에서 꾸준히 함께 커온 것이 있다면 그건 인간의 욕망이다. 이 욕망은 많을수록 좋다는 자본주의의 속성과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 암종으로 굳이 명명하자면 심암(心癌)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기준이 되는 가치관과 삶의 목표가 자연스럽게 ‘돈’이라는 것으로 변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마음에는 이미 이 심암(心癌)이라는 암종이 모든 생활반경에 전이되어 있지 않은지 모르겠다.

닥터 비치는 서서 진료하던 치과의사들을 앉아서 진료행위를 하게 한 혁명적인 치과 진료대를 발명 제작한 사람이지만 자신은 정작 달랑 집 한 채 가지고 변변치 않게 살아가는 가난한 의사이다. 그 진료대와 다른 발명품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기본으로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휴마나이즈(humanize)’와 ‘테크놀로지(technology)’에 관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참으로 인간적인 과학자요 의사인 닥터 비치의 삶에서 현대 문명인들이 지녀야 할 마음을 본다.  송기득 교수(철학자, 신학자)의 말처럼 인간의 욕망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 욕망을 끊임없이 휴머니즘적 욕망(욕망의 인간화)으로 묶어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의 말이 해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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