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섭
순천공고 역사교사
사고 공화국, 참사 공화국의 행진은 해가 바뀌어도 이어지고 있다. 어렵사리 보육원을 찾아 아이를 맡겨 놓았더니 두들겨 맞지를 않나, 간첩 잡고, 국토 방위에 전념해야 할 군대가 탈영병 잡는다며 부산을 떨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켜 달라며 엄동설한에 높은 굴뚝에 오르고, 신에 대한 최고의 경배 의식인 오체투지가 비정한 권력, 비열한 자본에 대한 호소 방식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 모든 문제를 풀어야 할 청와대와 여당은 장막 안에서 그들만의 권력 놀이에 분주하고, 이들을 견제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야당과 언론이 제몫을 하지 못하니 답답할 뿐이다. 힘든 세월을 담배로 달랬던 사람들은 치솟은 담배값 때문에 시름을 날려버릴 수단조차 앗겨 버렸으니 ,그들의 절망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그래도 우리 사회에 보면 희망의 불씨는 살아있다. 이들이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겪은 유가족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대참사가 났을 때 피해자 유족들은 극단적인 절망 속에서 보상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이 문제가 해결이 되면 빠르게 일상으로 되돌아 가버렸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각종 사고들이 수없이 많았음에도 반복되었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의 세월호 유가족들은 달랐다. 마지막까지 어른들을 믿었던 순수한 영혼들에 대한 최선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들은 자녀들과 같은 후진국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진실 조사 위원회가 이렇게라도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유족들의 강단진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은 다시 세월호를 인양해 달라며 거리를 걷고 있다. 

여러 형태로 유족들과 함께하고 있는 시민사회의 노력도 우리 사회 희망의 불씨다. 사건 직후 생중계가 진행되는 동안 국가와 정부가 최선을 다해 구조할 것으로 믿었던 국민들의 기대는 사라졌다. 유족들 곁에서 국민들은 애초의 다짐대로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갖가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우리 순천의 시민사회도 정말 존경스럽게 움직였다. 전남 동부에 자리한 순천에서 진도의 팽목항에 가는 것, 한반도 남부의 순천에서 안산과 서울까지 가는 것,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많은 분들이 오가면서 사건의 의미를 지켜나가려 했다. 초기에는 매일, 나중에는 일주일마다 비바람과 더위 추위 견뎌가며 촛불과 현수막을 들어 왔다. 기성 언론의 왜곡과 무관심에 분노한 유족들이 순천을 찾을 때 순천의 시민사회는 따스하게 맞아 주었다. 최근에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순천시민의 모임을 꾸렸는데, 얼마전 16일에는 언론인 서화숙님을 모시고 강연을 들었다. 

사실 시민사회를 뒷받침하는 것은 세월호 희생 학생과 비슷한 자녀와 동생을 둔 보통의 국민들이다. 우리 시민들은 언론 외면과 왜곡, 극우 세력의 준동에서도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하여 묵묵히 의사 표현을 해주었다. 서명대에 스스로 찾아와 인사를 건네며 서명을 해주었으며, 거리에서 유인물을 건네주면 외면하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 읽어 주셨다. 세월호 사건의 와중에서 유가족 다음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국민은 우리 교사들이 아닐까. 순진하게 선내 방송을 믿고서 황금의 탈출 시간대를 놓쳐버린 데 대한 부끄러움이 우리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의 순간에 우리 교사들은 끝끝내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했다. 선장처럼 비겁하게 도망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구하기 위하여 발버둥치다 아이들과 함께 영면했으며,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교사도 있다. 지난 13일 한신대학교에서 열린 참실보고회에서 우리는 세월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려 수첩을 만들어 나눠 가졌고, 유족과 상주모임 교사의 의미있는 발언을 경청했다. 

그렇다. 역사는 기억한만큼 발전한다고 했던가. 절망의 현실에서도 416을 기억하는 분들을 보며 희망을 갖는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가족과 더불어 이 어려움을 이겨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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