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두규
전라남도 청소년미래재단 원장
출산율은 높이고 자살률을 낮추는 정책이 ‘생명의 땅, 전남’을 가꾸는 지방정부의 주요 과제로 발굴되고 추진되기를 바란다. 이 중에서도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자살에 관하여 논의의 물꼬를 트기 위해 몇 자료를 살펴서 적어본다.

미국 정신의학자 제임스 길리건이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의 자살률과 살인율 통계를 분석했더니 자살률과 살인율이 동시에 높이 솟구쳤다가 동시에 급격하게 떨어졌다. 대체 왜 자살률과 살인율이 같이 오르내리는 것일까? 보수 정당, 즉 공화당 출신의 대통령이 될 때마다 온 나라가 자살과 살인이라는 ‘치명적인 전염성 폭력’으로 고통 받았고, 민주당 대통령이 집권하면 그 고통이 다소 풀렸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다. 보수정권은 부자 감세로 사회복지를 멀리하며,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상실감을 불러일으켜서 자살과 살인율을 끌어올린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도 경제 성장과 반비례하여 자살은 2배로 늘었다. 당시의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불평등으로 불행한 처지를 소설가는 ‘술 권하는 사회’로 표현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10만 명당 31.7명이 자살한 기록은 박정희 개발독재 시절인 1975년의 자살률 31.9명과 비슷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2.5명일 때, 우리나라는 그 2~3배나 되면서 최근 10년 동안 압도적 1위다.

개인적 정서로 자살은 특히 지지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미국 심리학자 토머스 조이너는 “타인에게 짐이 된다는 느낌(좌절된 효능감)”과 “소속이 없다는 느낌(좌절된 소속감)”을 가장 중요한 자살의 주관적 요인이라 했다. 자살은 관계의 사건이다. 조이너는 ‘이제 다리까지 걸어간다. 도중에 누군가가 내게 미소를 지어준다면, 나는 투신하지 않을 것이다.’하는 30대 독신의 유서를 예로 들면서 따뜻한 미소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음을 말한다. 

  ‘역대 최악’이었다는 평가를 듣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3월 1일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이 공포됐다. 자살공화국을 이룩한 정권이 자살예방법을 만들다니... 어쨌거나 광역 지방정부가 자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책을 추진하게 됐다. 하지만 아직 자살예방센터는 보기 드물고 정신보건센터의 활약은 미흡하다. 특히 노후 대책이 없는 노인에 대해서는 교육과 상담조차 이뤄지지 않아서 ‘좌절된 효능감과 소속감’은 심각한 자살로 치닫게 한다.

청소년들은 학교를 통해서 자살예방교육을 하고 상담도 이뤄진다. 우리 청소년미래재단이 세월호 사건으로 아픈 가슴을 안고 보낸 2014년 전남의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교 1~3학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청소년 생활 실태조사’에서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해 본 경험이 22.6%고, 자살을 계획해 본 경험은 6.9%나 되었다. 가장 극단의 위기행동인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활동이 더 넓고 깊게 이뤄져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경제 ‘성장’은 ‘자살’과 반대되는 자리에 있는 개념이라 할 수 있는 ‘행복’이나 ‘자아존중’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현재 절대 다수의 한국인들은 적어도 굶어죽을 위기에 처해 있지는 않고 사회는 번영을 구가한다. 그럼에도 불안하고 불행해한다. 돈과 지위 없는 사람에 대한 차별과 멸시에 떨고 있다. 그래서 ‘죽음 권하는 사회’의 그림자가 떠나지 않는다.

자살과 살인은 불평등이 뿌리다. 사회적 통합의 실패에 큰 원인이 있다. 생활의 문제를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기는 미흡한 사회복지 체계를 책임진 정치의 문제다. 작년의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그렇고, 지난 달 ‘서초 세 모녀’를 살인한 가장의 경우도 그렇다. 실패자를 사회적으로 품어주며, 수치심과 단절감에서 건져내야 한다. 따뜻하게 미소를 나누는 사회 분위기. 가족과 친구의 지지 관계를 형성시키는 일. 마을과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는 지방정부의 정책들. 따스한 봄기운이 추운 겨울을 밀어내듯이 사회적 지지망의 확대가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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