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내 조끼야』 / 나카에 요시오 글, 우에노 노리코 그림 / 박상희 옮김 / 비룡소

 

 


엄마가 짜 주신 내 조끼.
어때, 정말 멋지지!

정말 멋진 조끼다!
나도 한번 입어보자.

그래.

조금 끼나? 
 

 
 

 
그림책 <그건 내 조끼야>의 글은 이게 전부다. 이 책은 짧고 간결하지만 치밀한 구성으로 나는 어떤 구조 속의 존재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엄마가 짜 주신 조끼를 자랑하는 생쥐에게 오리가 묻는다. 정말 멋진 조끼라고, 나도 한번 입어보고 싶다고. 생쥐는 대답한다. “그래” 이 말 한마디는 커다란 파장이 되어 오리는 원숭이에게, 원숭이는 물개에게, 물개는 사자에게, 사자는 말에게, 말은 코끼리에게 조끼를 넘긴다. 작은 생쥐의 조끼는 덩치 큰 동물들에게 조금이 아니라 많이 낀 모습으로 우리를 배꼽 잡게 하지만, 다 늘어난 조끼를 발견한 생쥐는 “앗, 내 조끼!” 하며 화들짝 놀란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엉엉 울면서 이미 못쓰게 되어 버린 조끼를 끌고 가는 생쥐의 뒷모습이 안타깝다. ‘여기까지 인가?’ 하고 책장을 넘기는 순간 “아~ !”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코끼리 코에 줄을 매달고 생쥐가 신나게 그네 타는 모습이다.

빨간 그네는 바로 생쥐의 빨간 조끼! 생쥐에게 엄마가 짜주신 멋진 조끼는 없지만, 새로운 놀이로 함께 하는 이 시간. 두 친구는 충분히 행복해 보인다.

동물이 등장하는 그림책에서 작은 생쥐와 커다란 코끼리가 친구가 되는 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생쥐와 코끼리의 크기 차이만큼이나 사는 모습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는 건 현실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그림책에서 보여주듯 생쥐와 코끼리 사이에 이미 오리, 원숭이, 물개, 사자, 말이 존재하고 있다. ‘생쥐와 코끼리’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관계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관계를 통해 만들어졌다.

어느 시인은 “내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이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든, 나 아닌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모두 다, 내게 영향을 끼쳤으므로. 언제부턴지 알 수 없지만”이라고 했다. 우리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관계든 아니든 수없이 많은 관계망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보이지 않는 관계망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절망에 빠져 슬퍼하고 있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눈을 갖게 하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낸다. 울고 있는 생쥐 앞에서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코끼리의 모습은 그림책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코끼리는 생쥐가 왜 슬픈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생쥐 역시 자신의 슬픔을 이해하고 마음을 알아주는 코끼리의 위로를 통해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공감을 통한 위로와 극복이 조끼가 그네가 되고, 생쥐와 코끼리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 주변에는 내가 몰라서 지나치기도 하고, 알고 있더라도 코앞의 내 이익과 평온함을 위해 모르는 척 눈감고 귀 막았던 많은 존재들이 있다. 지난 3년간 나에게 밀양의 송전탑 공사 현장은 그런 일 중 하나였다. 우리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도 아닌데, 나랑 무슨 상관있나 싶기도 했다. 불의한 권력에 맞선 싸움에 함께 할 마음이 있다 해도 현장에 찾아가는 것 역시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의 안락한 삶이 누군가의 눈물과 아픔을 딛고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만이 아니다. 설사 그 아픔에 조금이라도 공감하며 손을 내밀고 싶어도 전체 구조 속에서 소외되고 파편화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인의 괴로움과 사회 문제가 악순환으로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에서 ‘나’는 너무 연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우리는 모두 서로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이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하는 손잡은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생쥐가 그랬던 것처럼 ‘나’라는 존재는, 내가 만든 관계든 아니든 수없이 많은 연결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밀양에서 확인했다. 그리고 생쥐의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봤을 코끼리의 마음이 되어 할머니들의 분노와 슬픔을 같이 느낀다.

간결한 그림책 한 권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감수성이 우리를 손잡게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힘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 심명선
어린이책시민연대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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