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용창 논설위원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모양입니다. 정당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헌법으로 보장된 국민 개인의 권리인데, 자기자신이 누려야 할 그 권리를 침해하는 결정을 사람들이 환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는 것,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과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아이디어를 하나 드려봅니다.

2004년에 저는 북촌 한옥마을 문간방에서 살았었는데요, 그 옆집에 어떤 가족이 세들어 살고 있었습니다. 여덟살쯤 되어 보이는 딸아이가 엄마한테 매일 혼나고 두드려 맞곤 했는데, 어느날은 다섯살쯤된 아들이 혼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쫓겨난 아들은 한옥집 대문밖에서 "엄마, 잘못했어, 문 열어줘"라는 말을 한 시간 째 읊조리고 있었고, 저는 경찰에 신고할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누나의 반응이었는데요, 내내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자기 동생이 혼나서 울고 있는데, 어떻게 노래를 부를 생각이 날까요? 본인이 폭력을 더 많이 당하기 때문에 그 괴로움을 더 잘 알텐데 말이죠.

저는 이 현상을 <폭력의 내면화>라고 부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 폭력을 당한 아이들은 마음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부모의 폭력을 당한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반응은 둘 중 하나인데요, 부모와 싸워서 이기는 게 첫째 방법이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둘째 방법입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일수록 싸워서 이길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둘째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순종의 방법을 선택하더라도 이성으로서는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 행위의 부당함>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에고라는 것이 작동해서 자신에 대한 폭력을 합리화하게 됩니다. <내가 잘못 해서 맞은 거야>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런 합리화가 없이는 그 폭력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나를 때려 죽일 수도 있을 만큼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부모가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그 폭력을 계속해서 부당한 것으로 생각하다보면, 그 상황을 견디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에고-즉, 자신을 보호하는 정신적 메카니즘-가 작동해서 그 폭력을 합리화하고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으니까요.

 이런 폭력의 내면화는 이성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이성이 아닌 에고의 산물이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렇게 이성이 아닌 에고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 현상은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등과 무관하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단지 우리 나라에선 저런 현상이 반공, 반(反)북한, 국가주의 등과 결합되어 크게 두드러질 뿐입니다.

정부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폭력을 당한 건 오래 전부터입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 박정희 시대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해 처음에 사람들은 인간적인 연민을 느꼈을 겁니다. 하지만, 정부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죄다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처형을 당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연민을 두려움과 증오로 바꾸게 됩니다. 왜냐구요? 살아남기 위해서죠. 그런 사람들에 대해 연민을 유지하면, 어느 순간 자기도 동조세력으로 몰려 같이 폭력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런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적극적인 반공, 반(反)북한, 적극적인 국가주의로 마음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합진보당이 해산당하는 것이 자기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부당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센 놈에 붙는 전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도 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아이디어를 내자면, 두려움의 메카니즘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먼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공감해주면 좋겠습니다. 국민에 대한 국가의 부당한 폭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내면화된 폭력을 이해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그런 폭력 내면화라는 정신적인 사고 방식을 일정 부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해, 즉, 나뿐만 아니라 내가 적으로 생각하는 상대방도 나와 똑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탕 하에서 대화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아바타 코스에 나오는 자비심 연습이 아주 효과적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미워 죽을 것 같은 상대방을 가슴으로 초대해서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와 똑같이 이 사람도 자기 삶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
나와 똑같이 이 사람도 자기 삶에서 고난을 피해 보려 하고 있다.
나와 똑같이 이 사람도 슬픔과 외로움과 절망을  겪어 알고 있다.
나와 똑같이 이 사람도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고 있다.
나와 똑같이 이 사람도 삶에 대해 배우고 있다.

종북도, 좌빨도, 보수꼴통도, 노빠도, 조중동도, 이렇게 행복해지려고, 고난을 피해보려고 이것 저것 해보는 것 아닐까요?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해보니까 효과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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