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칼럼-삶 그리고 죽음

▲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장
사람의 행동을 오랫동안 관찰한 한 심리학자는 말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착하고 고분고분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운다.” 착한 사람은 통제 불능의 사회 속에서 좌절을 맛보고 실패를 경험하면서, 질서정연하고 예측 가능한 세상이기를 바란다. 이런 바람이 모여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가 어느 정도는 공정한 세상이라고 믿게 된다. 이를 ‘공정한 세상 이론’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공정하다’는 이 믿음에 기반을 두어, 정해진 규칙을 따르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릴 것이며, 규칙에 어긋나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한다. 규칙을 따르는 노력이 있으면 성공하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는 실험은 많다. 아무런 기준이 전혀 없이 무작위로 몇 사람을 선정하여 벌을 받게 하였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더니, 벌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우스운 사람이라고 답변하는 경향을 보였다. 벌을 받는 사람들이 무작위로 선정되어 우연히 그러한 곤경에 처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답변했다.

▲ 사진출처: www.pennlive.com

예로부터 전해오는 ‘인과응보’ ‘권선징악’의 교훈 또한 ‘공정한 세상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좋은 사람은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교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만큼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공정한 세상 이론’이다.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우리가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보고 그 이전의 노력을 역으로 추리한다는 점이다. 즉, 누군가 잘 되었다면 그에 합당한 충분한 노력을 쏟았다고 인정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불행이 닥치면 그 사람이 규칙을 지키지 않았고 나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희생자를 비난’하는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애석하지만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안산시 단원구는 못사는 동네다’, ‘단식하고 있는 유민이 아빠는 이혼까지 한 사람이다’, ‘돈이 없으면 가까운 데로 가지 제주도까지 뭐하러 간다고...’등등의 말은 불행이 닥칠만한 사람들이기에 그 사람들 스스로 그 불행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식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확장하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교도소 수감자, 장애인, 노인 등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의식에도 ‘그럴만한 사람’이라는 ‘공정한 세상 이론’이 은밀하게 숨겨져 있다.

물론 ‘콩 심은데 콩 난다’. 즉, 인과관계가 없는 일은 없다. 그러나 ‘우연’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엄청나다. 이는 우주와 생명의 탄생,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현재의 ‘나’라는 존재가 있기까지를 되돌아보면 ‘엄청나게 많이 반복된 우연’이 아니고는 결코 설명하지 못한다. ‘우연’의 힘은 자신의 연애, 결혼이나 자녀의 출생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지난한 노력이 항상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예측한 성과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있음도 우리는 슬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불행이나 타인의 고통도 오로지 과거의 행동에 대한 결과만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내가 못나고 가치 없는 존재라서 이런 불행과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웃의 불행 또한 결코 그의 몫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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