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상준
소설가, 논설위원장
며칠 전, 순천언론협동조합(이하 언협) 송년 모임이 문화의 거리, 어느 갤러리에서 있었다. 그곳에 자주 들락거리지 않아 거기에서 문화의 난장이 어떻게 벌어지는 지 잘 모른다. 문화를 즐기며 걷고 노니는 이들이 어느 연령대, 어떤 부류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드물게 가보면 청소년과 청년들이 기꺼이 나다니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마침, 언협 모임이 저녁에 있어 문화의 거리 풍경을 슬며시 엿볼 수 있었다. 눈 내리고 청춘들이 만남 가지기에 좋을 세밑이었지만 거리는 썰렁했다.  

순천은 도시가 아니라 정원이라고 고집스럽게 내세운다. 순천에 걸맞는 풍경 연상시키는 표어이긴 하나, 순천만정원만 앞세우는 인상이 짙다. 꽃과 나무, 휑뎅그렁한 바람뿐인 정원은 어느 한 구석 모자라서 싱그럽지 못하다. 꽃과 나무 있고 햇살 같은 웃음과 벅참 때로는 노을 같은 울음과 트인 공간에서 앓는 외로움. 골방의 어둠 속에서 시와 노래와 거대 담론을 만나고 더불어 거친 바람 맞으며 어깨 겯고 거니는 청춘들이 그들만의 문화 일궈낼 수 있을 때 제대로 된 정원도시이지 않겠는가? 

누군가 그런 바탕을 그들에게 꾸려줘야 한다. 그 누군가가 지자체이고 지역에서 문화예술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일 테다. 문화의 거리에서 청소년과 청년들이 웃고 떠들고, 때로는 논쟁하고 어느 적에는 복받치는 설움에 겨워 꺼이꺼이 눈물 쏟아내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꺼리 제공할 즈음에야 도시는 문화를 담아낸 정원으로 거듭난다 하겠다.  

얼마 전, 순천시 문화예술과 어느 담당자께서 내게 전화를 했다. 문화의 거리에서 수능 끝낸 고3들이 체험할 수 있는 놀이가 있으면 참여하겠느냔 물음이었다. 흡족한 제안이었다. 차제에, 더 큰 물꼬를 내었으면 한다.

문화의 거리를 청소년들이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청년들이 허기진 듯 뭉기적거리며 거대 논제 아닌 미시적 담론이나마 설전하며 아파하면서도 창작실의 그 절대고독 속으로 스며드는 혹은 여느 마당에서 나의 것, 나만의 것을 드러낼 수 있도록 자리 마련하여 그들에게 내어주자는 것이다.

‘문화의 날’이 시행되고 있고 자유학기제를 시범 실시하는 순천에서만이라도 제대로 일궈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건네주자. 구체적인 모양새는 지자체와 지역교육청, 초•중•고교, 청소년 단체, 지역의 문학인,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궁리하고 짜내면 때깔 좋고 빛나는 방안 마련될 수 있으리니, 이를 주관하는 부서가 지자체의 문화예술과일 터인즉 우선 소매 걷어 부치고 나서주길 갈망한다.

요즘 통영이 방문지로 더욱 뜬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통영을 찾는 데에는 문화통영이란 지역의 상을 일궈낸 연유이다. 유치진•치환 형제 문인의 고향이다. 박경리가 그곳에서 태어났고 윤이상이 한시도 잊지 못한 향리이다. 김춘수는 윤이상과 어릴 적 함께 보낸 동무란다. 이중섭이 제주도보다 더 오래 거처하면서 <소>와 <달과 까마귀> 등 태나는 작업을 해낸 곳이다. 동피랑은 발상의 전복으로 이끌어낸 처소이다. 통영은 그런 바탕을 문화로 꾸려냈다. 순천 역시 통영에 뒤지지 않는 문화유산을 담고 있지 않은가! 

청소년과 청년들이 문화의 거리에서 거침없이 노닐고 막힘없이 문화 일궈낼 수 있도록 마당 만들어내어 그들에게 건넬 때 거기서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 화가, 사진가, 공예가, 바리스타, 연극인, 음악인, 만화가, 출판과 문화기획자 등등 문화순천을 돋보이게 빛낼 잉태의 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정원과 문화가 비빔으로 어우러진 정원도시 아니겠는가!

문화의 거리를 청소년과 청년들이 장악할 수 있는 알짜배기 기획이 2015년 벽두부터 마련되길 절실히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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