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광양에 산다. 하지만 순천과 여수에 마실 가듯 자주 다닌다. 어제는 여수, 순천, 구례에서 온 친구들이 광양에서 뭉쳤다. 그제는 순천 비타민센터에서 열린 교육정담회에 참석했고 그 전날은 여순항쟁 답사를 위해 여수에 갔다. 여수·순천·광양(이하 여순광)·구례는 승용차로 30분 정도면 시내 중심지라도 갈 수 있는 이웃이다. 우리는 고로쇠를 마시러 광양으로 오고, 오동도 동박새 소리 들으며 생선회 먹으러 여수에 가고, 순천 국가정원과 갈대밭에서 힐링 타임을 즐긴다. 어떤 이들은 광양 집에서 여천공단으로 출근했다 순천에서 저녁 모임을 하고 귀가하기도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많은 광양 학생들이 순천 지역 고등학교로 유학을 가기도 하고, 여수·순천의 우수한 중학생들이 전남 유일의 자립형사립고인 광양제철고에 진학하기도 하였다. 광양만은 역사적으로도 생사를 함께하는 생존공동체였다.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주 활동무대로써 이 지역 수군(水軍)들은 그와 함께 싸웠고, 주민들은 양곡을 제공하며 의병으로 하나가 되었다. 여순항쟁은 1948년 여수에서 시작하여 순천에 이르러 사방으로 번지다가 백운산·지리산에서 종료되었다. 게다가 2004년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이 광양에 개청된 이래, 경남 하동을 포함하여 광양만권이 미래산업 생산기지와 문화관광 정주 도시로서 명실공히 경제공동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이곳의 국회의원 선거구를 보면 여수시 갑(甲)구는 전국 선거구 중 가장 낮은 인구수인 13만 9,027명으로 아슬아슬하게 을(乙)구와 분구되었으며 순천·광양은 구례·곡성을 포함하여 미묘하게 선거구를 공유하고 있다. 심지어 광양제철과 여수국가산단에서 배출되는 여러 종류의 공해도 함께 마시지 않는가! 이렇듯 우리는 ‘C 자형’ 광양만을 중심으로 역사·인문·지리·정치·경제 등 모든 측면에서 오랫동안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필자가 일자리를 찾아 이곳에 산 지 30년이 훨씬 지났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백운산, 지리산과 같은 명산에 아름다운 섬진강과 한려수도와 다도해, 그리고 송광사·선암사·순천만의 풍광과 풍성한 인심이 좋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곳도 불편한 경우가 있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차고지에 전동셔터를 설치할 생각으로 업체를 찾아보았는데 가장 가까운 곳이 광주였다. 조금 더 전문적인 일은 대도시에 문의해야 하는 사례는 무척 많을 것이다. 또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왜 연말이면 주민등록을 ‘내 지역’으로 옮기자고 할까? 꼭 ‘내 지역’ 고등학교에 가야만 다시 ‘내 지역’으로 돌아올까? 쓰레기 소각장 같은 시설은 자기 지역에서 가장 먼, 즉 인근 지자체 가까운 곳으로 설치하고, 하나의 역사인 여순항쟁을 놓고서 추모공원은 ‘내 지역’이어야 할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전남 동부권 의과대학 유치, 2013 국제정원박람회·2026여수세계섬박람회 성공 개최, 경전선 우회 노선 신설, KTX 광양역 정차, 백운산 국립공원화, 광역 쓰레기 소각장 신설, 첨단신소재 산업 유치, 광양항 활성화, 상하수도와 도로·광역 교통망 확충. 여순항쟁 진상규명과 추모공원 설치 등등 어느 것 하나 기초지자체 단독으로 풀어가기 힘든 과제이다. 혹자는 통합도시 창원(2010년 마산·창원·진해가 창원으로 통합)의 사례를 들어 여순광의 통합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말한다. 기존 마산이나 김해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몇천억 정부 지원 약속에 현혹된 잘못된 선택이라고 후회한단다. 당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주도로 주민투표도 없이 지자체 의회 통과로 졸속 결정되었다. 필자는 도시통합으로 50만 이상의 도시를 만들어 현행 지방자치법이 제공하는 여러 ‘특례’를 받자거나, 100만 이상의 ‘특례시’를 만들어 더 많은 세금을 받아오자는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각 지자체가 잘하는 일들은 그대로 지속하고, 단독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일들, 이웃 도시와 반드시 함께 풀어야만 하는 장기적 정책 과제들을 풀어갈 수 있는 새로운 광역행정체계로서 도시연합을 제안하는 것이다. 2015년 전남대 이정록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행정학이나 지역개발학 등 다양한 도시 전문가들은 여순광의 도시연합 성공 가능성을 75%로 보고 있다. 이들 전문가 집단 65%는 여순광의 도시연합을 도시통합으로 가는 전(前) 단계로서 이해하며, 89%는 10년 이내, 즉 2025년이 가기 전에 도시연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현실은 요원하다. 몇 차례 통합 논의가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 실패의 원인과 책임을 따질 능력은 필자의 능력 밖이다. 지난 9월 2일 여순광 시장 3인이 순천시청에서 만나 지역 현안과 협력사업 등을 점검하며 힘을 모으기로 했단다. 2009년 가장 앞장 서서 여순광 통합을 주장하였던 노관규 순천 시장은 올해 메가시티(대도시)의 깃발을 세우고 다시 통합을 주장하고 나섰다.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 유일의 합계출산율 1명 이하인 인구 소멸 위기에 놓여있다. 게다가 장기간의 경제 불황과 고물가, 자연재해나 코로나 등 기후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더구나 지방은 급속한 노령화와 젊은 층들의 수도권으로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더욱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 75개 시의 평균 인구는 약 33만 명이고, 50만 명 이상의 도시는 17개이며, 4개 시(수원, 창원, 고양, 용인)는 100만 명 이상으로 공식 ‘특례시’가 되었다. 지난 10월 통계를 보면, 여순광 어느 도시도 30만 명을 넘지 못하나 합계 인구는 706,225명에 이른다. 그렇다고 하루빨리 통합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 최대의 효과를 내느냐는 관련 전문가의 몫이다. 필자의 강조점은 우선 여순광은 공동부담으로 가칭 ‘이순신시(市) 시정연구원’을 세워, 각 지자체장들과 정치인, 기업가, 시민단체 등 이 시민들과 손잡고 지역의 난제들을 풀어가는 아이디어와 정책을 만들어 가는 공론장을 열어 주길 바란다. 선진국에서는 캐나다 토론토시가 가장 선진적인 사례로 꼽힌다. 1954년 토론토시를 중심으로 6개 지방정부가 하나의 정치·행정 단위로 기능하는 광역 시 정부를 구성하였으나, 1998년에 이르러 실질적인 도시 생활권역과 행정권역이 통합된 완전한 단일 광역 행정도시로 재탄생하였다. 우리도 최소 10여 년 동안 충분한 연구와 협의·설득·동의의 긴 호흡으로 가자. 언젠가 광양만(가능하면 구례, 곡성까지)에도 그런 날이 오면, 백운산에 올라 백두대간의 기상을 드높이고 송광사 독경 소리로 마음을 깨끗이 하며 무슬목 앞바다에서 카누를 타며 태평양을 향해 노 저어 가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

박발진 전남  녹색연합 공동대표
박발진 전남  녹색연합 공동대표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