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본지는  기획시리즈 ‘순천 청년들이 사는 진솔한 이야기’(청사진)를 연재한다. 순천에 사는  청년, 순천을 떠난 청년, 순천으로 온 청년들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싣는다. 열세 번째로 정신병원 간호사인 황수빈(25세)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순천과의 인연은?

부끄럽지만 대학을 입학하기 전까지 순천과 순창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했다. 19년을 서울에서 살았고 부모님 또한 경상도가 고향이다. 순천으로 대학을 간다고 하니 (서울) 친구들이 답답해서 어떻게 살래. 하며 서울에 있는 전문대라도 가라고 하더라. 하지만 이제는 순천에 오게 된 걸 행운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순천 정착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대학을 다니는 내내 ’뜰‘ 생각뿐이었다. 막상 첫 취업을 서울에서 하고 나니 순천이 너무 그립더라. 서울의 빽빽한 건물들, 바글바글한 사람들, 팍팍하고 개인적인 분위기가 질리고 싫었다. 순천 특유의 여유로운 인심과 친근한 전라도 말투가 너무 좋다. 이름도 순천, 뭔가 순해 보이지 않나? (웃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을 꼽자면 사람이다. 내가 만난 순천 사람들은 다 순하고 따뜻하다.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고 그들과 헤어지기 싫었다. 그게 내가 순천 정착을 결심한 이유의 99.9%다.

옥천은 황수빈 씨가 순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다. 생각이 복잡해질 때면 이곳을 무작정 걷는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동천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옥천은 황수빈 씨가 순천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다. 생각이 복잡해질 때면 이곳을 무작정 걷는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옥천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순천에서의 삶은 어떤가?

순천은 완벽한 도시라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자연경관, 맛있는 음식, 충분한 교육과 문화, 예술 인프라 등 순천의 좋은 점을 말하라면 과장 보태서 밤새도록 말할 수 있다. 전국 어떤 도시도 순천만큼 살기 좋은 곳은 없을 거다. 순천에 온 후 항상 가지고 있던 만성적인 우울함이 많이 나아졌다. 고요한 밤에 옥천을 걸으면서 하루를 되돌아보고 우울할 때는 곧바로 해변에 가 노을을 본다. 정말 꿈같은 삶 아닌가? 순천의 삶은 늘 지치고 힘든 간호사 생활도 버틸 여유를 준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원래부터 간호사가 꿈은 아니었다. 수학을 좋아해 수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바람에 취업에 용이한 간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간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사명감 없이는 버티기 힘든 직업이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한두 번 든 것이 아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정신병원에서 근무하게 된 후로는 나름대로 성취감을 느끼며 만족하며 근무하고 있다.

첫 직장을 그만둔 까닭은?

첫 직장은 서울의 모 대학병원이었다. 신규 간호사로 들어가고 1년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3교대와 5시간에 달하는 오버타임, 어마어마한 업무 강도에 시달렸다. 이브닝이면 오후 11시 퇴근인데 새벽 3, 4시에 간다거나 나이트면 오전 7시 퇴근해야 하는데 낮 11시, 12시까지 집에 못 갔다. 병원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다시 출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만두게 된) 계기는 담당 환자가 두 번째로 사망했을 때, 사후 처치를 능숙하게 못 했다. 그랬더니 선배 간호사가 20분 동안 욕설과 인신공격이 섞인 폭언을 하더라. 사후 뒷정리를 혼자 새벽에 했다. 그때 좀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생겼다. 당시 그 병원에서 신규 간호사가 1년 내 10명이 사직했다. 그중에 나도 하나였다.

어쩌다 정신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나?

첫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더 이상 간호사 일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배달 알바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이 일도 만만치 않더라. 그러던 중 지인에게 정신병원을 추천받았다. 간호사 면허가 아깝기도 하고 사람이 죽지 않는 곳이라면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일단 배달 알바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취업하게 되었다.

환자의 혈압체크를 하고 있는 황수빈씨
환자의 피를 채혈하는 황수빈 씨. 그녀는 낙안면의 정신병원에서 1년째 근무 중이다. 

정신병원이 생소하다. 하는 일은?

환자들을 관찰하고 돌보고 가끔 주사도 놓는 것이 주 업무이다. 약이나 치료방침이 변경되었을 때 환자가 어떤 방향으로 행동하고 생각의 변화가 생기는지 파악한다. 이 모든 과정을 일상적인 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환자를 자극하면 돌발 행동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환자가 돌발행동을 하면 보호사를 불러 묶고 약을 놓는다. 정신병원에서 일하게 된 지 벌써 1년이 넘었지만 환자를 강압적으로 묶고 제압해야 할 때면 매번 마음이 괴롭다.

정신병원 간호사로서의 마음가짐은?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환자들을 돌보면 분노나 화를 참기 어려울 때가 있다. 가끔씩 환자의 문제행동으로 폭행 당할 때는 내가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폭행을 당할 걸까 하는 자괴감까지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첫 현장실습을 나가기 전 ’나이팅게일 선서‘를 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꼭 좋은 간호사가 되어 환자들을 돕겠다고 다짐했던 결심을 되새긴다. 되도록 환자들을 관심과 사랑으로 보듬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 초 대출을 받아 매곡동에 위치한 아파트를 구매했다. 2년 후 부모님이 은퇴하시면 온 가족이 순천에 모여 살고 싶다. 순천이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듯이 우리 가족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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