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황우
순천제일대학교 평생교육원장/공학박사
사람은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이다. 그에 반해 인간(人間)은 사람의 사이, 즉 인간사회를 일컫는 단어다. 즉, 사람은 생물학적 의미와 기능적, 본능적인 의미가 강한 반면 인간은 사람사이의 관계성에 중심을 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의 주인공인 에드워드 엘릭은 보통 사람의 화학적 구성 성분을 물 35[l], 탄소 20[kg], 암모니아 4[l], 석회 1.5[kg], 인 800[g], 염분 250[g], 초석 100[g], 유황 80[g], 불소 7.5[g], 철 5[g], 규소 3[g]으로 정의하고 특히, 여기에 1[g]의 사랑이 더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반면에‘기생수’라는 판타지 소설에서는 사람을 '악마'라는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생물인 동시에, 지구에 기생하는 생물이라고 주장한다. 특성에 따라 사람이 사랑과 악마의 이중성이 가능한 유일한 동물임을 말하는 듯하다.

그러면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어떤 이는 그 차이점을 ‘도덕적인 행동양식’이라고 말하고 있고, 니체(Nietzsche, 1844~1900)는“인간은 가치를 평가하고 창조하는 존재로서 동물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 바로 ‘가치 평가 행위’다. 가치 평가 행위는 세계를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에 의거해 평가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활동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가능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도덕적 행위와 더불어 가치 있는 행위를 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가치 있는 행위를 통해 사람이 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하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깊숙이 잠재된 욕구 중에 하나이다. 사람에게는 타인, 사회, 역사, 양심 등의 가치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가치 평가에 무딘 사람이 세상을 어렵고 혼탁하게 하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와 안하무인(眼下無人)을 양산하는 것이다. 

“인간은 만남으로 자란다”고 한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원하든 원하지 않던 간에 여러 가지 형태의 대인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인간상호의 관계성이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이며 필연적인 사실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럼,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사람이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필자는 글을 쓰면서 나쁜 사람의 유형을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가 부자이면서도 가난한 사람의 다른 것을 빼앗고자 하는 사람이다. 배고파 도둑질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으나 배부른 자의 탐욕은 용서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약자를 도와주지 않고 힘과 완력으로 괴롭히는 사람이다. 왕따의 가해자나 조폭, 각종 폭행 사범 등이 그들이다.

세 번째는 잘못을 시인하기보다 새로운 거짓과 위선으로 순간과 진실을 회피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보며 진실을 회피하여 잘못을 피해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네 번째가 부모, 친인척 등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나 기타 소유물을 가지고 허세부리는 사람이다. 노력이 결여된 상속은 능력이 아니라 행운인데도 이를 능력으로 치부하며 타인에 대해 무례와 거만을 일삼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위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으나 나를 포함하여 그 사람이 참다운 사람이냐에 대해서는 누구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의 형상을 유지했으나 심성이 사람이지 못한 사람...

반면에 사람답게 사는 사람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인정과 존중으로 남을 대하는 사람, 약자 편에 선사람,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하는 사람, 함께함과 공동체 의식이 강한 사람, 연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 공평한 사람, 측은지심과 긍휼이 있는 사람, 용기 있고 솔직한 사람, 포용력이 있는 사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 등이 그들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럼 “나는?”“나는 지금 진정 사람답게 살고 있나?”를 반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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