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호
순천전자고 교사
순천대 박물관에서 지난 14일 의미 있는 학술행사가 열렸다. ‘호남, 길을 열자’라는 행사였다. 호남의 역량 있는 연구자들과 우리의 사회적 문제를 총체적으로 고민하고 길을 열기 위해 노력해 온 원로 활동가와 지역차별에 대항하는 시민운동을 이끄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진단과 대안까지 제시하여 큰 울림을 남겼다.

이 행사가 기획되고 있을 때부터 내심 반가웠다. 왜냐하면 순천에 역량 있는 지역운동가가 많은데 아직 뚜렷한 방향을 설정하여 나아가는 모습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말 지역민이 존경할만한 사람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역사학자답게 이종범 교수는 ‘8-9세기 선종사상, 12세기 정혜결사운동, 14세기 정도전의 변혁사상 등은 호남에서 출발했거나 호남사람과의 교류 속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19-20세기에 들어와 ‘매천 황현의 학문 등을 통해서 봐도 문학 등 인문학이 발전하고, 정직한 패자를 보듬는 역사정신, 협동정신 등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호남 학술공동체를 제안하였다.

강원도 인제에서 활동하는 정성헌 ‘한국 DMZ 생명동산’ 이사장은 카톨릭 농민회 활동으로 옥고도 치러야 했던 분이라서 그런지 내공이 깊고 진정성 있는 지역운동의 모범적인 사례를 말씀해주셨다. 앞으로 30년 후에는 중북부는 사람이 못살 곳이 될 거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우선 국토를 살리자고 호소하였다. 또 우리 애들을 살리고 식량자립과 에너지 자립 등을 말씀하셨다. 구구절절이 가슴에 와 닿는 진단이었다. 그리고 해외에 나간 5만 7천여개 기업 중에 2만개 기업이 남과 북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또 지금의 헌법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어려우니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도 주장하였다.

농민운동부터 87년 민주화운동 등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늘 앞장섰던 분이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문제의식과 처방전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깊게 공감한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는 ‘호남인재들의 미래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라는 주제발표를 하였다. 정신사적인 호남의 역사적 위업만을 강조하는 것은 과도한 정신주의가 아닌가라는 적나라한 비판과 함께 호남이 지역차별에 대항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주문하였다. 특히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지역차별문제에 적극 대응하기 보다는 피해가는 모습이라고 질타하였다. 그러면서 호남도 고쳐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반기업 정서라고 주장하였다. 기업유치 등에 반대하니 “호남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정치에 줄을 대거나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일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직성적으로 표현해서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가장 현실적인 진단과 대안을 제시했다고 본다.

이번 행사는 우리 지역현실에서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문제를 직접 거론하고 대안까지 모색한 훌륭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호남 소외현상이라는 거대한 한국사회의 적폐를 이번 행사 한 번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행사의 핵심적인 기획자인 박소정 전 YMCA이사장도  말했듯이 “화두만 던졌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행사를 기점으로 앞으로 지역에서 출발하여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에 경종을 울리고 대안을 제시하는 열정 가득한 전라도 사람의 아쌀하고 솔찬한 움직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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