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이면 생물학적으로 몸 속 세포가 다 바뀌어 이전의 내가 아니라 하고, 백일이면 계절이 온통 바뀌어 있는 긴 날이기도 하다. 해룡면 농주리에 있는 초중등대안학교인 사랑어린배움터가 100일 동안 기도를 하고 100일 기도가 열 번을 채워 1000일이 되었다. 무엇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었다. 상사에서 해룡으로 이사를 하고 폐교된 지 몇 년이 지나 먼지가 채 가시지 않은 교실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암담할 때 오직 할 수 있는 일은 하늘의 뜻을 구하고 하늘의 뜻에 맡기는 기도를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고 한다. 2012년 1월 29일 시작된 기도는 하루가 지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가 모여 지난 2014년 10월 24일 마침내 1000일을 맞이했다.

천일기도를 시작한 날 사람들의 가슴에는 어떤 기대가 있었을까? 천일이 지나 어떤 모습이 예비 되어 있을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천일(千日)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변할 시간이지만 천일(天日)동안 몸과 마음을 모아 기도로 보낸 사람들의 품격은 한참이나 달라보였다.

온갖 풀이 난무하던 운동장은 깔끔하게 정돈되었고 페인트칠이 벗겨져 나가던 건물은 분홍, 주황, 하늘색으로 화려하게 옷을 입었다. 건물 한쪽에는 사람들이 모이고 노래하고 책을 읽는 관옥나무 도서관이 세워졌다. 한 때 6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던 교실은 저마다 다른 빛깔로 곱게 꾸며져 있다. 식당은 공양간이라는 이름이 걸려 있고 공양간 안에는 나란히 세 개의 설거지통이 놓여 있다. 물은 흐르지 않도록 담아 그릇을 씻을 수 있는 구조로 버려지는 밥 한 톨 없다. 운동장 한쪽 구석에는 음악연습실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목공실과 흙 작업실이 지어지고 있다. 학교 안 구석구석에 철학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정갈하고 기품이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 다시 시작된 천일은 와온 길을 걸으며 자기에게 찾아온 한 마디 말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도서관 바닥에 깔린 가득 찬 空이라는 글이 적힌 종이에 자신의 한 마디를 찾아 정성을 들여 써내려 간다.


지금 여기에서 주인공으로

지난 24일(금) 저녁 7시 천일기도 회향 자리에는 교사 두 사람이 지난 3년 동안 학교 안에서 살아온 삶의 과정을 발표했다.

박지숙 교사는 “저하고 함께 놀아줘서 고맙습니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지난 3년 동안 그이는 ‘나답게 사는 것이 뭔가?’ 하는 생각을 놓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세 가지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그 세 가지 선물은 지금 여기에서 주인공으로 살 수 있게 된 것과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자기 자신을 잘 모시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란다. 자신이 받은 세 가지 선물을 잘 나누기 위해 이제는 날마다 잔치가 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며 지난 3년을 돌아봤다.

▲ 박지숙 교사가 천일기도로 살아온 지난 3년을 논문을 써서 이야기 하고 있다.

두 번째 발표자인 박정은 교사는 교사의 눈빛, 몸짓, 말 하나하나가 기운을 타고 아이들에게 스며드는데 간디 말씀처럼 어머니와 같은 마음, 늘 배우고 공부하는 학생, 쉼 없이 자신을 보고 깨어 있을 수 있는 수행자가 되어야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또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교사인 자신도 배워야 하는 학생이라는 사실이 희망이요 큰 힘이라는 사실에 눈 뜰 수 있었던 지나온 시간에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다는 고백으로 마무리했다.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

지난 3년 동안 지내온 이야기를 발표한 교사들에게만 선물과 은총이 쏟아진 것은 아니었다. 교사들은 1주일에 한번 ‘간디의 교육철학’을 읽고 방학이면 슈타이너 공부를 했고 부모들은 학년별로 1주일에 한번 ‘노자’ 공부모임을 통해 부모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교사든 부모든 공부모임을 통해 끊임없이 서로의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었고 기도 또한 멈추지 않았다. 학교에 속한 공동체 구성원들은 매일 오전 8시와 정오, 오후 6시에 알림 종이 울리면 서로 다른 자리에 있더라도 같은 시간에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학교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세바퀴 회의를 진행한다. 구성원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 말에 토 달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다. 물론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은 그냥 넘어가도 된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 속 생각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지혜가 모아졌다. 중요한 결정을 하거나 소임을 맡는 것은 제비뽑기로 결정한다. 다수결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생각과 누구나 주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모든 행사나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마음 모으기를 했다.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고 가만히 마음을 모으며 진행하기 때문에 저마다의 선한 마음이 모아져 그 어떤 행사라도 흡족한 행사가 될 수 있었다. 천일(千日)이라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큰 변화가 함께 할 만한 긴 시간이지만 기도와 함께 했던 이들의 천일은 그냥저냥 산 천일과는 분명하게 달랐다.

천일기도가 준 선물은 기도에 동참한 학교 구성원 모두의 것이었고 흘낏 기도에 동참한 사람에게도 그 빛은 흘러들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천 날을 기도로 맞이한다.

 
삶을 위한 인생학교‘生·共·스콜레’를 열다

  천일기도를 마친 사랑어린 배움터는 어른들의 학교인 ‘삶을 위한 인생학교’를 열기로 했다. ‘生 共 스콜레’ 라는 이름을 걸고 시작되는 어른들의 배움은 덴마크의 자유학교인 '폴케호이스콜레' 의 세계를 보며 고안해 낸 것이다.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의 가야할 길을 덴마크를 통해 바라보자는 것이다.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교육을 통해 다시 나라를 세웠던 덴마크를 모델 삼아 대한민국에서도 좋은 사회의 바탕을 만드는, 삶을 위한 새로운 학교를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지난 26일(일) 오후 2시 사랑어린배움터에서 삶을 위한 인생학교 ‘生․共․스콜레’ 설명회가 진행됐다. ‘生․共․스콜레’ 는 살아있고 공생하는 학교라는 뜻으로 불교의 핵심인 공(空)과 존재의 실상을 알고 진리의 삶을 살고자 하는 학생정신을 배움의 바탕으로 삼는다. 生․共․스콜레는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사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자발성, 협력과 자치의 삶을 배우는 학생정신과 걷고, 기도하고, 밥을 모시는 생활 습관으로 자신이 사랑어린 사람임을 알고 함께 어울려 놀면서 크는 집을 만들어간다고 했다. 

  삶을 위한 인생학교 ‘生․共․스콜레’ 설명회를 들으러 충남 아산과 강화도, 순천 곳곳에서 26명이 참석했다. 저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삶을 위한 인생학교 ‘生․共․스콜레’에 동의하고 함께 배우고 싶은 20세 이상 어른 학생들은 11월 8일까지 지원서를 내면 면담을 통해 입학이 가능하다.

‣ 원서교부: 다음 카페 ‘사랑어린학교’
‣ 문        의: 사랑어린배움터 74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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