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태웅 시인
지난 9월 지리산 자락에 살고 있는 나에게 산행 가이드 요청이 들어왔다. 체코의 저널리스트가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사살된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의 빗점골 비트와 피아골에 있는 남로당 구례군당 비트를 찾아 취재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이루어질 무렵 중립국감시위원으로 한국에 일년 머무르다 갔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한국의 현대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저널리스트답게 남북의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또 남한에 남아있는 빨치산들의 흔적을 직접 보고 싶어 한 것이었다.

이번 답사는 원래 다큐멘터리 감독 조성봉이 담당이었다. 제주도에 머무르며 ‘구럼비, 바람이 분다’라는 독립영화를 만들어 오키나와에 순회상영을 하는 관계로, 나에게 그 역할을 하도록 부탁해 온 것이었다. 소설 ‘빨치산의 딸’의 작가인 정지아도 동행하기로 했다.

나는 적잖이 부담이 되어 빗점골과 피아골의 비트를 미리 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빗점골에 있는 이현상의 비트는 쉬 찾을 수 있었다. 이현상이 사살됐다는 계곡의 넓은 바위에 간단한 음식을 차리고 술을 따르고 절을 올렸다. 체코에서 온 그도 어색한 폼으로 절을 올렸다.

문제는 2일째에 발생했다. 3년 전 조성봉 감독과 피아골의 구례군당 비트를 찾을 때는 그를 따라갔으므로 내가 혼자서 그곳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날이 새기가 피아골로 올라갔다. 몇 번인가 길을 놓치고 헤맸지만 그곳을 찾아냈다.

나는 스스로 감동했다. 내 영감의 힘이었다. 나는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리고, 나의 무의식에서 파동치는 영감의 실끝을 찾아냈다. 테세우스에게 미궁에서 탈출할 방법이라며 실타래를 건네준 바로 그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나에게도 안겨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다시 찾을 때 쉽게 안내하기 위해 돌아 나오는 주요 길목에 배낭에 있던 초코파이 봉지를 묶어 두었다. 나뭇가지에 묶어 놓은 초코파이 봉지만 찾으면 쉽게 안내할 수 있게 된 거다.

다시 산길을 내려가 일행들과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숲속을 막 들어섰지만 내가 묶어놓은 초코파이 봉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초코파이 봉지는 없었다.

나의 영감은 작동하지 않았다. 아니 초코파이 봉지를 묶는 순간 내 영감은 작동을 멈추고 기계적 작동만 시작한 것이었다. 사람들을 숲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오르락내리락 고생만 시키고 구례군당 비트를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 테세우스가 미궁에 들어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쓰러트리지 못하고 오히려 일행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고 만 것이었다.

작가 정지아는 나를 위로했지만, 체코의 저널리스트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승자박이었다. 제 꾀에 제가 빠지고 만 것이었다. 노자는 “성(聖)을 절(絶)하고 지(知)를 버리면 민리(民利)가 백배하리라”라고 하였다. 노자 사상의 핵심은 ‘인위적인 것에 대한 극도의 혐오’라고 요약할 수 있다. 나는 영감의 힘이 작동할 가능성을 아예 단절하고 인위적인 것에 의존하다가 나의 미션에 실패하고 만 것이었다.

세월호 특별법이 해법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조사위원회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는 법리만 내세우는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대해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실은 사고의 원인이 밝혀지는 것을 극력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얄팍한 법리라는 것은 내가 숲속에 초코파이 봉지 몇 개를 붙여놓고, 그곳을 되찾아 가려고 했던 어리석음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나는 다시 물병 한 개만 들고 피아골의 그곳 남로당 구례군당 비트를 찾으려 한다. 이번에는 초코파이 봉지를 거부하고 순전히 내 영감의 힘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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