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2차 아파트 품앗이 모임

“가을에 나눔 장터랑 영화제를 동네에서 하고 싶어요”
“나는 무조건 찬성”
“여기는 아이들이 많아서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천연화장품 만들어 팔께요”
“나는 그럼 뭐하지? 재주가 하나도 없는데..”
“또 다른 재능이 있잖아요?”
“뭐요?”
“봉사하면 돼요..”

주부들이 나누는 수다가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것에 집중될 때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 된다. 한 사람의 제안이 타인에게 호응되어 새바람을 일으킨다. 최근 연향동 호반2차 삭막했던 아파트가 엄마들의 주도로 살기 좋고 재미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아파트 부녀회, 공간이 주는 선물

호반2차아파트는 부녀회 사무실이 따로 있다. 아파트 한 칸이 통째로 부녀회 사무실이다. 처음부터 부녀회가 공간을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작년부터 부녀회가 생기고 사용하게 됐다. 한두 번 모임이 진행되면서 모여든 주민들은 더 다양해졌다. 부녀회에서 함께 요가를 배우기도 했다. 공간이 있으니 모일 수 있었고 함께 모이자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전에 환경수세미 만들기와 비누 만들기도 시도했지만 그때 뿐, 더 이상 다른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올해부터는 모이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호반아파트에 이사 온 지 10년째 되는 손채영(주부. 47세) 씨가 나서고부터다. 기후환경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손 씨는 다른 아파트에 강의를 다니면서 “우리 아파트도 이런 활동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싹텄다고 한다.



저마다의 능력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며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나다.

그러던 어느 날 손 씨는 ‘지역화폐’ 강연을 듣게 됐다. 과천품앗이 운영위원장을 했던 주부 김영희 씨가 동네에서 서로의 재능을 나누며 만들어가는 품앗이 이야기였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 이야기는 가슴 벅찬 감동이었다. ‘세상에 저런 세상도 있구나..모두가 똑같이 인정되는 사회가 있구나..나도 저런 세상에서 살고싶다’ 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사람이 가진 모든 능력이 동등하고, 그 모든 능력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변호사와 교사와 마트 직원이 저마다 월급도 다르고 사회적 대우도 다른 현실에서 그런 세상을 꿈꿀 수나 있을까? 그녀는 그런 세상을 직접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 설렘은 그녀를 딴 사람으로 바꾸었다. 손 씨는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40대 후반의 나이에도 기세등등 별의별 일을 다 꿈꾸고 있다.

지난 25일(목) 호반아파트 부녀회 사무실에 제습제를 만들기 위해 한 사람 두 사람 모이기 시작했다. 집에서 만든 빵을 가져온 사람도 있고, 퀼트로 만든 가방을 메고 온 사람도 있었다. 저마다 종이가방에 플라스틱 통을 들고 왔다. 쓰레기통에 버려질 플라스틱 통에는 염화칼슘을 이용해 제습제가 만들어졌다. 주부들이 손 빠르게 제습제를 만들고 순간순간 수다가 이어진다. 아줌마들의 수다가 무언가를 추진하는 힘일 때 그 기운은 불가능한 일이 없게 한다. 오고가는 수다 속에 10월에는 동네 나눔 장터와 영화제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모아진다. 한 번도 글을 써서 발표해 본적이 없는 주부들 속에서 동네신문을 만들어 이런 활동 내용을 아파트에 공유해 보자는 제안도 나온다.
 

▲ 지난 9월 23일(화) 호반2차아파트 부녀회 회원들이 부녀회 사무실에서 제습제를 만들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우리는 공동체

제습제도 만들고 천연화장품도 만들면서 점점 친해지고 있는 주부들에게 생활의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장정미 씨는(40세) “3년 전 이사 왔는데 그동안 이웃과 왕래 없이 살다가 이런 활동을 하면서 친해진 사람이 많다” 며 사는 것이 점점 더 재미있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미정 씨는(47세) “부녀회가 한 달에 한번 모임 하는데 젊은 엄마들은 안 나왔다. 겨우 네다섯 명 모여서 뭘 하려면 재미가 없었는데 올해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모임을 하기 전에는 서로 몰랐다. 요즘 동네에서 서로 알고 지내니 너무 좋다.” 고 말했다. 재미있을 것 같아 참여했다는 신혜련씨(42세)는 “우리 아파트는 음식물과 종이만 구분하는데 캔, 병 등도 분류해서 버리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 퀼트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퀼트로 천연화장품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은 천연화장품 만들기로 서로 품앗이 하며 나누고 있다.

서로 알고 지내는 것,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달라지는 것이 너무 많다. 자신들의 생활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 처음에는 전혀 의도 한 바 아니지만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는 가운데 동네는 잠자고 밥먹고 쉬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활기찬 삶이 흐르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