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관석
㈜에코프렌드 대표
뜰 앞 감나무에 열린 감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그 옆의 배나무는 철부지 꽃망울을 터뜨렸다.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모양이다.

요즘 순천만 갈대밭엔 수많은 탐방객이 줄을 잇는다. 철새인 새매 가족이 새끼를 데리고 울며 비행하는 모습이 눈과 귀에 잡힌다. 한 달 쯤 후면 순천만에 시베리아 등지에서 여름을 보낸 흑두루미가 도래할 것이다. 그 먼 곳에서도 월동지를 정확하게 찾아오는 영물이다. 갯벌에 도요새의 무리도 점점 개체수가 늘어난다.

이때쯤이면 순천만에 연접한 들판은 가을걷이가 끝내고 철새들의 사교장이자 먹이터전으로 변할 것이다. 순천만의 외형은 그렇게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는 듯하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은 시끄럽기 그지없다. 이 소란을 다양한 사람들 간 조화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편하게 생각하려한다. 그러나 왠지 모를 슬픔과 분노가 가슴을 저리게 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가을을 타는 탓일까? 아님 아직도 매듭짓지 못한 세월호법 때문일까? 쌀 수입개방으로 비탄에 빠진 농부들의 마음 때문일까? 

농업은 자연과의 조화 속에 생명을 경작하고 그 결실로 인간의 먹을거리를 해결하는 산업이다. 농업에 필요한 절대적 요건은 자연현상이다. 일조가 좋아야 하고 토양이 기름져야 한다. 태풍이나 폭우의 피해도 없어야 하고 병충해 피해도 적어야 한다. 이 모든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되느냐에 따라 결실이 달라진다.

그래도 계절 따라 재배하는 노지 농산물은 비교적 신경이 덜 쓰인다. 일조와 온도는 자연에 의탁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울철 시설하우스의 작물, 그중에서 오이재배는 고도의 재배기술을 요한다. 일조는 하늘에 맡긴다 해도 건강한 토양과 온도‧습도 유지, 물주기, 시비하기, 병충해 방제 등 생육조건을 최상으로 만들기 위한 재배법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작물의 상태를 읽어야 한다. 잎이나 꽃, 열매의 모양, 마디의 간격, 생장점의 색깔과 윤기를 보고 상태를 읽고 최적의 재배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재배한 작물은 재배기술에 따라 결실에 많은 차이가 난다. 액수로 따지면 500평 시설하우스에서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정도의 수익차가 생긴다. 그러다 보니 재배기술을 놓고 농부들 간 은밀한 경쟁이 펼쳐지기도 한다.

잘 가꾸어진 결실물은 땀으로 빚은 예술 작품이라 생각 될 때가 있다. 잎에선 광속의 햇빛에너지를 포획하고, 흙 속 뿌리에서는 흡수한 영양소를 끌어올려 햇빛과 합성, 유기에너지를 생산하는 농업! 식물의 잎이야말로 무기에너지를 유기에너지로 바꾸는 청정한 화학공장이다. 이곳에선 맑은 공기와 수정과도 같은 물방울만이 무공해 폐수다. 그런 식물의 결실을 도와 인간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이지 싶다.

해마다 이맘때면 가을작물 수확과 시설하우스 준비로 땀 흘리는 농부들의 열정을 본다. 농부의 땀방울을 우리 사회는 귀중하게 생각해야한다. 자연을 빌어 생명을 가꾸는 농부의 영원함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회는 무관심과 무감각의 메마른 사회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올해 10월부터 내년 6월까지 약 8개월간의 경작기를 맞아 ‘농민들 모두 무탈하시고 시설하우스도 성공을 거두시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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