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라는 것이 무한정잉께.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조례동 주공 6차아파트 노인정에서 한글 공부를 하고 있는 할머니의 말씀이다. 76세 윤용순 할머니, 83세 김복순 할머니, 85세 김오례 할머니, 대부분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작은 밥상머리에 앉아 또박또박 정도전의 ‘단심가’와 이방원의 ‘하여가’를 베껴쓰신다. 공부하는 중에 한마디씩 살아온 경륜으로 진리의 말씀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여기에 오시는 할머니들은 혈압도 있고, 당뇨도 있고, 관절염으로 걸어 다니기도 힘들지만 공부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

자녀들이 밥 먹으러 가자는 날도 어김없이 공부하러 오신다. 오랜만의 식사자리에서 “나 받아쓰기 하러 가야 돼” 후딱 식사 마치고 다급히 공부방 책상에 와 앉으신다. 뒤늦게 배운 한글 공부지만 중급, 고급 과정으로 갈수록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편지도 쓰면서 생활의 즐거움이 늘어간다는 할머니들. 이 분들은 공책에 글을 쓰면서 다리도 아프고 눈도 시리지만 치매에 대한 걱정 만큼은 덜어진다. 매일 병원을 오가며 치료하는 친구들보다 오히려 건강하시단다. 머리를 쓰며 배우고, 마음이 즐겁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김효숙 씨는 이런 분들을 보며 “정신없이 바쁘게 살지만 보람이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눈도 침침해 글씨를 읽어내려 가는 것도 힘든 할머니 학생들은 꼬박꼬박 숙제하는 것을 잊지 않으신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성실한 선생님 덕 이제. 늙으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근디 우리 선생님이 숙제 안 해 오면 마음 상해 할까봐 죽기 살기로 하제.”

숙제검사를 하던 김 씨는 얼굴가득 웃음이 번지며 “한글을 가르치며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고 말했다. 만남의 과정에서 오래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수업준비하면서 새로운 공부를 하니 오히려 즐겁다는 것이다. 
 

 

에너지의 근원은‘감사’

 
어려운 시절을 살며 배움의 길을 놓치신 분들에게 김효숙 씨는(사진) 자신이 그동안 갈고 닦아온 재능과 솜씨를 맘껏 발휘한다. 수업은 한글공부만 하는것이 아니다. 처녀시절부터 즐겨 읽어 온 고전과 서예를 배우며 썼던 시조를 넣기도 하고, 합창단 단원으로 오랫동안 노래를 불러온 가락으로 노래도 수업에 결합한다.

그 뿐 아니다. 유아교육학을 전공해서 한 때 어린이집도 운영해 봤고, 유아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다보니 생후 6개월부터 18개월의 영유아를 위한 도서관 프로그램인 북스타트 수업도 하고 있다. 기후환경 해설가 활동경력과 자원순환리더 강사 자격증도 있다.

그 일만으로도 바쁠 것 같은데, 매일 오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도서관지킴이 활동도 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이 그 연세에 가능한가 싶다. 게다가 최근에는 세계월드비전에서 초중고등학생들 환경강의로 봉사하는 자원 활동가 자격증도 얻었다며 기뻐했다. 하~이럴수가..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역량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만큼이 아닐까? 그이는 오히려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니까 아플 시간도 없다고 한다.

무엇이 한 사람에게 이토록 많은 에너지를 내서 일하도록 하는지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를 묻자 “매사에 감사”라고 답했다. “어르신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감사하구요.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을 내게 주심에 감사하고, 자투리 시간까지 낭비하지 말자는 시간관념을 갖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어요.”
그이는 삶을 살아오며 “삶은 순간순간의 깨어있음이다” 는 글귀를 늘 마음에 새기며 살고 있다고 한다. 이런 봉사 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단다. 인생관이 듣고 싶어졌다.
 

삶은 순간순간의 깨어있음

주어진 순간을 허투루 보내는 일이 없다는 그이는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자” 는 것이 인생관이라고 했다. 그동안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일정을 조율해가며 최선을 다해 배워왔다.

공부해서 무얼 하겠다는 생각 없이 기회가 닿는대로 공부 했는데 차곡차곡 쌓이니 써 먹을 곳이 너무 많아졌다고 한다. 배운 내용이 하나 둘 쌓이고 기후환경해설가 활동과 북스타트 활동, 한글 강사 활동이 쌓이자 점차로 강의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생겼다. 강의를 하며 더 깊은 공부가 가능해지기도 했다. 배우는 족족 활용 할 곳이 있으니, 배움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기후환경해설가와 자원순환리더로서 학생들에게 기후변화를 이해시키고, 그 영향을 알리며 환경의 심각성에 대비하여 우리 모두 지구의 온도가 더이상 올라가지 않게 하는 환경지킴이가 되길 소망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어느 날 연향동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유난히 밝고 빛나는 미소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효숙 선생님을 만났다. 이 많은 일을 하면서도 저토록 평화로운 표정으로 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궁금했다. 그이는 도서관에 근무하는 지인의 권유로 2010년 호수도서관 개관과 함께 도서관지킴이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워낙 좋아해서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책을 빌려 읽다가 일하게 된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안내하고 정리하고, 필요한 책을 찾아주기도 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이는 오랫동안 도서관을 다녀서 책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도 바삭하고, 좋아하는 공간에서 일하고 있어 너무 좋다는 말을 연달아 했다. 그녀가 가장 보람이 있을 때는 이용자들이 원하는 자료를 바로 찾아줄 때라고 한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과 잠시 책으로 만나는 사이지만 짧은 만남으로도 통하는 구석이 있으면 인연이 맺어지기도 한다. 그이는 75세까지 이렇게 다양한 봉사를 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음~~ 75세까지 봉사라니? 정말 멋진 인생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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