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태웅 시인
2박 3일 동안 아이와 함께했던 서해안 여행에서 돌아왔다. 3일치 신문을 다 읽고, 고장난 진공청소기를 고쳐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또 장화를 신고 나가 텃밭의 풀을 뽑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일상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여행할 때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숙소에서 자는 일은 실상 삶을 충전하는 게 아니었다. 연안의 바다는 욕망으로 들끓는 거대한 웅덩이였다. 부안에서 일직선으로 된 새만금 방조제를 따라 군산까지 달리면서 졸음이 와서 몇 번인나 고개를 흔들어야 했다. 거기에다 고군산군도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섬 선유도도 곳곳이 파헤쳐져 공사장을 방불케 했다. 빨리 돌아오고 싶었다. 더 강고하게 일상을 회복하고 싶었다.

여행의 첫날 밤 TV로 ‘데자뷰’라는 영화를 보았다. 첫 장면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제복을 단정히 입은 미국 해군이 전장에서 돌아온다. 병사들이 배에 오른 가족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눌 때 느닷없이 배가 폭발한다. 미국 해병이 되기를 원했지만 거부당한 자가 앙심을 품고 저지른 일이었다. 영화와 현실을 동일시 할 수 없지만 이 사건을 수사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미국 수사진은 한국의 수사진과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우리나라 수사진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의 규명에는 눈을 감으려 하고, 사고와 직접 관련이 없는 선박회사의 사주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급급했다.

그즈음 7․30 보궐선거가 있었다. 투표함을 여는 순간부터 야당이 밀리기 시작했고, 한 번의 역전도 없이 끝까지 끌려가다가 보기 좋게 깨지고 말았다.

서너 달 전 순천의 한 식당에서 서갑원을 보았다. 그땐 이미 김선동의 의원직 상실이 기정사실화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가 측근들과 함께 향후의 일정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밥을 다 먹더니 다른 손님들에게 악수 세례를 퍼 부었다. 나이만 좀 젊다뿐이지 기성정치인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는 행태에 나는 무료함 비슷한 권태를 느꼈다. 이것이 흔히 언론에서 말하는 ‘피로감’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서갑원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천만 받으면 바로 당선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당선이 되면 뭐 하나. 그는 이미 의원님의 신분으로 지역의 많은 휘하들을 줄 세우면서 중앙에 군림하게 될 텐데. 순천에 그렇게도 인물이 없었을까. 좀 신선하고 영리하고 침착하고 대담한 전략전술을 구사해서 순천시민의 환호와 신뢰를 한 몸에 받을 그런 인물이 그렇게도 없었을까.

여당은 수구꼴통 짓으로 허우적댈 때도 과감하게 김종인, 이상돈, 이준석 등을 끌어들여 자신의 내부를 비판하게 함으로써 야당의 설 자리를 미리 제거해 버렸다. 야당도 현 정부를 비판할 게 아니라 먼저 스스로에게 돌을 던졌어야 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순천․곡성의 서갑원과 수도권에서 야당이 참패하자 실망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실망한다고 끝날 일인가. 순천과 곡성의 유권자가 서갑원이 아니고 이정현을 선택한 게 실망하고, 분노할 일인가. 야당은 지금까지 주민의 평등한 행복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적어도 집권 여당과 현저하게 차별적으로 한 일이 있는가.

이제 내가 할 말을 하고 끝내야겠다. 내 안에 갇혀 있으면 온갖 우울과 외로움과 괴로움이 다 달려든다. 실상 그것은 미움과 질시와 열패감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호남이라고 해서 국회의원도, 지자체장도, 시군구 의원도 모두 다 야당이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최소한이라도 기능케 하는 견제와 균형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내 안에 있는 이질적인 것, 내 안에 있는 적대적인 것, 내 안에 있는 남. 이것이야말로 내가 몰랐던 진정한 나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번 선거는 우리에게 이러한 교훈을 주기 위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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