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해보는 기도    별량 동화사를 지나 낙안목장마을로 이어지는 남도삼백리 2길을 걷다보니, 들판과 산과 바다를 내려다보는 지점에 돌탑이 서있습니다. 절로 두 손 모으고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느님

오늘도 저희 가족에게 빛나는 아침과 건강한 노동, 나른하지만 편안한 저녁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희 가축과 작물들에게도 어제와 같이 무사한 하루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제가 받은 이 평범한 은혜가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과분한 축복임을 느낍니다. 또한 어느 날 갑자기 돌풍에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는 불안한 축복임도 느낍니다.

세월호 참사로 꽃 같은 자식을 잃은 가족들이 죄 없는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메고 뙤약볕 아래를 한없이 걷고 있습니다. 많은 유가족들이 진상 조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곡기를 끊고 차가운 길바닥 위에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희생자 열 명은 100일이 넘은 지금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아직 깊은 바다 속에 갇혀 있습니다. 정부는 우리의 주식인 쌀 수입을 전면 개방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힘겹게 버티고 있는 농민들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며 국민의 생명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정의의 하느님

참사의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도 진상조사를 외면하고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피해자와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저들의 심장에도 공감의 힘을 되살려 주시어 아픔을 아픔으로, 슬픔을 슬픔으로, 고통을 고통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들이 탐욕과 교만에서 벗어나 특별법 제정에 협조함으로써 유가족들이 눈물을 닦고 가슴 속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하여 유가족들의 슬픔과 분노가 미움과 원한으로 바뀌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상상할 수 없는 공포와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난 꽃다운 영혼들이 당신의 자비로 하늘나라에서나마 평화 속에서 안식을 얻게 하십시오. 사람은 돈이 아니라 당신의 자비와 은혜로 만들어진 양식으로써만 목숨을 이어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저들이 깨닫게 해 주십시오.

지금 당장 이 땅에서 당신의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넘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오직 작은 실개천으로나마 멈추지 않고 흘러 모든 사람들이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만은 당신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있는 땅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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