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운중학교의 색다른 시도

보통의 학교 수학여행은 학생들이 단체로 명승지에서 사진 찍고 한 식당에서 무더기로 식사를 한다. 교사는 아이들을 통제하느라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다. 최근 이런 방식의 수학여행은 교육적이지 못하다고 없앤 학교도 있다. 모든 수학여행이 교육적이지 못할까? 교실 밖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진 교사들의 다른 시도가 늘고 있다.

▲ 수학여행 길에 한강에서 함께 자전거를 탄 순천왕운중학교 학생들.
왕운중학교에 근무하는 유복남 선생님은 수학여행 형식을 바꿔보고 싶어 작년부터 연습을 했다. 2012년 여름방학 때 자기 주도적 체험활동을 진행했다. 학생 16명이 조별로 나눠 활동하는 1박2일짜리 체험활동이었다. 학생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하고 체험하는 새로운 시도에 결재를 했던 교장선생님도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노심초사했다. 도우미 선생님도 3명이나 동행했다. 학생들끼리만 움직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어쩌나싶은 우려 때문이었다.

▲ 2박3일 수학여행을 이끈 유복남선생과 김남희선생(왼쪽부터)
2012년의 경험으로 체험활동에 자신감과 확신이 생겼다. 올해 새로운 체험활동의 모델을 만들고 싶은 생각에 2학년 복수담임을 맡았다. 마침 교사생활을 갓 시작한 김남희 선생님과 같은 반의 복수담임이 되었다. 신규 선생님의 열정과 유복남 선생님의 경험이 결합하여 새로운 시도가 이뤄졌다. 처음 수학여행 장소를 결정하는 것부터 학생들의 의견을 들었다. 압도적 다수가 서울을 선택했다. 어디로 가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도 조별로 결정했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학생들 몫이었다. 학생들이 “롯데월드엔 가면 안 되지요?” 스스로 제어하며 질문하기도 했다. 담임인 유복남선생은 “가도된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후회할지 모른다. 그러나 후회도 공부다”고 답했다. 이번 수학여행을 통해 ‘폭넓게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길러지기’를 바랐다.

▲ 조별로 지하철표를 끊고있는 아이들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 계획을 세운 학생들은 어땠을까? 수학여행에 대한 김지훈 학생의 평가는 이렇다. “예전의 수학여행은 선생님만 따라 다니는 틀에 박힌 여행이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갈 곳을 미리 정하고, 그곳에서 자유롭게 놀았던 것이 좋았다.” 같은 반 전성은 학생은 “스스로 계획을 수립하여 의논하고, 여럿이 의견을 모아 조정하고 계획서로 만들면서 계획을 잘 세우는 방법을 알았다. 계획에 따라 하고 싶었던 활동을 하니 성취감이 생겼다. 외진 곳에 던져 놓아도 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스스로 세운 계획과 어긋나는 경우 요인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 경험들은 소중하다. 부모나 교사에 의해 강요된 배움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준비과정부터 실행과정까지 초조함을 경험했을 것이다. 조원끼리 이견으로 다투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3일간의 동행에서 배려와 존중을 배웠을 것이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본 아이는 파리나 런던에 가서도 지하철을 탈 수 있을 것이다. 몸으로 익히고 경험이 누적돼야 학습할 수 있는 그릇도 커진다.


9조‘작은하마’의 2박3일

순천에서 출발한 기차는 4시간 30분만에 서울 용산역에 도착했다. 38명의 학생들은 네 명씩 조를 이뤄 흩어졌다. 담당 교사 두 명은 문제가 생길 경우 전화와 카카오톡으로 아이들과 연락하기로 약속하고 조별로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작은하마’라고 조 이름을 정한 9조 일정은 첫째 날 대학생을 취재하고, 경복궁 경회루를 관람하고 동대문에서 쇼핑을 하고 대학로에서 밥도 먹는다. 둘째 날은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명동본점 고양이 다락방에서 고양이들과 놀고, 예술의 전당에서 뮤지컬도 본다. 셋째 날은 박물관을 관람한다.

연극과 뮤지컬 관람, 한강변 자전거타기는 38명이 모두 함께 하고 방문한 대학교와 만난 사람은 조별로 모두 다 달랐다.


내 인생에 중요한 교훈을 준 수학여행

▲ 이상아/왕운중학교 2학년
드디어 내가 진짜 싫어하는 시험이 끝났다. 등에 올려진 짐을 한꺼번에 내려놓으니 너무 행복했다. 시험이 끝나고 기분을 달랠 수 있는 수학여행이 계획되어있다. 친구들과 토의해서 세운 계획이 흥미로웠다.

4시간 30분 동안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첫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고 명동으로 갔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돼서 서성이다가 친구 건희가 도와줘서 잘 갈 수 있었다. 일본인과 중국인이 정말 많았다. 간판도 중국어, 일본어에 홍보하는 사람도 외국어로 홍보를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예쁜 머리띠가 있어 동생을 위해 샀다. 동생을 위해 뭔가 샀다는 것이 뿌듯했다.

그렇게 놀다가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으로 갔다. 볼거리가 없나 한참을 걸어 다니다가 결국 돌아갈 시간이 되어 다시 지하철을 타고 혜화동으로 갔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헤매지 않았다. 길을 물어가며 성균관대학교에 도착했는데, 들어가긴 했지만 막상 인터뷰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누가 먼저 다가와서 인터뷰를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두리번거렸다. 용기를 내서 한 대학생 언니에게 인터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송중기를 봤냐는 질문을 했는데 못 봤다며 친구가 봤는데 후광이 나고 딱 봐도 연예인이라고 하며 말할 때 뭔가 흥분돼 보여서 진짜 재미있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바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출발했다. 혹시 몰라 든든하게 밥을 먹어두고 역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찾다가 우연히 출구로 나와서 보니 바로 마로니에 공원이 있어서 진짜진짜 놀랬다. 화장실은 못 찾았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곳에서 ‘옥탑방 고양이’라는 연극을 보았다. 기대를 별로 안 했는데 완전 재미있었다. 두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배우들도 잘생기고 예뻐서 좋았다. 내가 언제 또 이런 연극을 보러올 수 있을까? 첫날은 너무 피곤해서 숙소에 돌아가 씻고 바로 잤다.

다음날은 우리 반이 단체로 한강에서 자전거를 탔다. 날씨도 좋고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서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좀 신기했던 건 비둘기에게 다가갔는데 사람을 겁내지 않고 안 피했다. 진짜 당황했다. 순천에서는 살짝만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는데 그만큼 서울에 사람이 많은 건가? 그 후 지하철을 타고 홍익대학교에 도착했다. 홍대거리를 걷고,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으로 갔다. 다리가 아파서 기운이 없었는데 그곳에는 옷가게가 하도 많아 피로를 싹 잊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녁 7시 30분에 예술의전당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윤동주 달을 쏘다’라는 뮤지컬을 감상했다. 윤동주 역할을 맡은 배우가 노래를 부르고, 다른 배우들도 노래를 불러 공연장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짜 멋지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작년에 국어책에서 윤동주의 서시를 배웠는데 이 뮤지컬을 통해 그의 생애를 알게 되어 감동이 컸다. 멀리서 보던 무대를 가까이서 보니 신기했다.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던 배우를 가까이서 보니 멋있었다. 평생 기억할 만한 좋은 경험이었다. 이날도 피곤했지만 놀고 자야한다는 의무감(?)에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셋째 날. 한별이가 깨워줘서 일어났다. 숭례문엘 갔다가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으로 직행했다. 오늘은 더 많은 건물을 보고 진짜 옷구경도 많이 하고 값싼 옷도 많이 사서 기분이 좋았다. 엄마 티셔츠도 사고, 동생 치마도 심사숙고해서 샀다. 서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용산역에서 기차를 탄 후 그동안 쌓인 피로감에 4시간 30분 동안 거의 쓰러져있다시피 한 상태로 순천까지 내려왔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지하철 표를 끊고, 물건을 사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중요한 경험을 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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