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용창 yongchangjang@hotmail.com
비폭력대화를 다른 말로 공감 대화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비폭력이니 공감이니 하는 말들이 죄다 낯설고, 왠지 서양 사람들이나 쓰는 말인 것 같아 어색하다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황희 정승 이야기로 설명을 좀 드려볼까 합니다.

제가 배운 초등학교 교과서에 다음과 같은 황희 정승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개똥이와 쇠똥이라는 머슴 둘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다투게 됩니다. 둘이 아무리 우겨도 누가 옳은지 판가름이 안 나자 황희 정승에게 가서 따져보자고 합니다. 먼저 개똥이가 황희 정승에게 자기 주장을 펼치자, 황희 정승이, “어, 그래, 니 말이 맞네”라고 합니다. 다음, 쇠똥이가 또 자기 주장을 펼치자, 황희 정승이, “어, 그래, 니 말이 맞네”라고 합니다. 그렇게 머슴 둘은 그 길로 화해를 하고 돌아서 나갑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쭉 지켜본 황희 정승의 아내가 머슴이 돌아가고 나서 물어봅니다. “아니, 양쪽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개똥이도 옳고 쇠똥이도 옳을 수 있어요?” 그러자 황희 정승이 답합니다. “어, 그래요. 당신 말도 맞네요.”

황희 정승의 이 일화는 첫째, 공감 대화의 핵심을 잘 보여줍니다. 공감(共感, compassion)을 글자 그대로 옮기면 ‘함께 느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문자의 뜻 때문에 사람들은, 그냥 함께 느끼기만 하면 공감대화가 되는 거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공감대화가 되려면 들은 사람이 말한 사람에게, “예. 그래요. 맞아요” 등으로 대답을 해줘야 합니다. 아무 대답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할 수 없어서, 공감을 못 얻습니다. 그래서 황희 정승은 자기에게 이야기를 던지 세 사람 모두에게 “예.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라고 답한 것입니다.

둘째, 이 일화는 공감 대화의 위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황희 정승이 한 일은 그저 “어, 그래, 니 말이 맞어”라고 답한 것뿐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화해하기 힘들었던 두 머슴이 곧장 화해를 하게 됩니다. 어디서 이런 위력이 나올까요? 두 머슴은 모두 자기가 옳다는 확신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공감이라는 것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황희 정승은 바로 그 공감이라는 걸 선물한 것이고요. 이 선물은 일종의 사랑의 에너지라서, 이 에너지를 받고 나면 가슴 속의 긴장이 확 풀려버립니다. 그래서 둘은 서로 누가 옳은지 더 이상 다툴 필요조차 없어져 버리고, 바로 그런 에너지로 화해하게 된 것이지요.

셋째, 이 일화는 또한 많은 분들이 혼동하는 공감대화의 기술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말한 사람에게 공감을 해주려면 상대방에게 “그래요. 당신 말이 옳아요”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만일 상대방이 터무니없는 말을 하면 어떻게 답을 해줄 수 있을까요? 만일 비가 오는데, 날씨가 좋다고 하면? 그래도 그냥 상대방의 말을 반복하면서 “그래요”라고 답해주면 됩니다. 황희 정승처럼 말이지요. 비가 오는 날씨는 좋은 날씨가 아닌가요? 가뭄에 비 오는 날씨는 농민에게 좋은 날씨가 맞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날씨가 좋은 날씨인지는 말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감대화는 어떤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말한 사람의 진실’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진실의 일면을 보는 눈이 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눈으로만 보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본 것이 진실이 아니라고 느껴 자꾸 따지고 싶어집니다. 공감대화는 우리 눈이 아닌 상대방의 눈으로 진실을 보는 훈련을 시켜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른 말을 할 때에도, 그 모두는 진실입니다.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공격하는 사람조차, 그는 다만 공감을 바랄 뿐입니다. 그러니 공감해 주십시오. 공감은 사랑의 에너지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평화로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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