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묻는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단어 세 가지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범위를 좁혀서, 영어 알파벳 ‘L’ 자로 시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단어는 무엇인가요?

며칠 전 여름방학을 시작하는 날의 일이다. 교과실에서 컴퓨터 관련 기기를 연결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려고 희망자를 뽑았더니 단 한 명만 손을 들었다. 자진해서 돕겠다는 것이 가상해 보였지만, 설마 혼자 오나 싶었다. 바로 전날 학급 체험활동할 때에 잘 나가는 1인용 자전거가 아니라, 자전거를 잘 못타는 친구를 위해 힘들게 2인용 자전거로 봉사 아닌 봉사활동에 나선 기특한 녀석이기에 뒤에 태운 그 친구 한 명이라도 데리고 오나 싶었다. 그런데 혼자만 왔기에 사정을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친구니 우정이니 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친구는 반에서 1등하는 친구가 사라진다면 성적 등급 경쟁에서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도 한다는 것이다. 그건 아니라고, 우정이 소중한 거라고 말하는 내가 오히려 철 지난 유행가를 부르는 듯싶었다. 일상에서의 경쟁이 삶 속 깊이 구조화되고 깊이 있게 내면화된 사회에서 ‘우정’이라니, ‘사랑’이라니.

부정하건 말건 교육계는 전교조 법외노조화 파동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업무 능력은 물론 도덕성에서도 한참 함량 미달인 사람을 교육부의 수장 자리에 추천한 이들과, 세간의 비난과 비웃음에도 오래도록 질기게 버티다 물러난 한심한 이들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한, 시간이 지나면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역시 쉽사리 물거품이 되고 만다. 대표적으로 4대강의 수질오염은 뼈아프다. 그 모습만으로도 흉측하고 징그러운 큰빗이끼벌레의 출현은 이 사업을 몰아부친 자들의 얼굴과 오버랩된다. 재해 예방과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또한 환경 보존, 수량 확보, 수질 개선, 관광·레저사업 진흥 등 다목적 효과를 갖는 사업이라고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홍보하던 이들의 거짓말을 확인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셈이다. 인간과 자연 생태계에 끼친 재앙과 죄는 어찌하란 말인가?

전교조 설립을 둘러싼 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기억난다. 한국판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평가받기도 했던 영화이다. <닫힌 교문을 열며>(1991년, 이재구 감독, 장산곶매 제작, 16mm/90분)라는 독립영화다. 이 영화는 정부의 영화 제작 방해와 탄압으로 주요 배경이 된 교문이 바뀌기도 하고, 촬영이 지연되면서 영하 12도의 겨울에 여름옷을 입고 무려 9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촬영했던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이 영화 장면 중에서 뚜렷하게 기억에 남기도 하고 수업 중에 자주 인용했던 장면은 영어 교사인 주인공(지금은 유명한 중견배우가 된 정진영의 데뷔작)이 학생들에게 영어 ‘L’ 자로 시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단어를 물었던 장면이다. 학생들은 ‘사랑(love)’과 ‘자유(liberty)’는 알아맞히지만 결국 한 단어를 맞히지를 못했다. 영어 교사는 이렇게 답한다. ‘labor(노동)’.

그 의미를 굳이 살피지 않아도 ‘사랑’과 ‘자유’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견이 없을 듯하다. 그런데 ‘노동’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평택지역 중학생들이 노동 관련 특강 자리에서 ‘노동자는 ○○○이다’란 문장을 완성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덜 배운 자, 외국인, 거지, 장애인’ 등으로 표현했다. 단지 이 학생들만의 반응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갈 길도 멀고, 할 말도 많아진다. 그래서 그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노동’에 대한 문제는 지면 사정을 이유로 다음 기회로 미룬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노동’은 그렇다 쳐도, ‘사랑’과 ‘우정’에서부터 막히는 현실에서 보면 더 길이 보이지 않는다. 아, 어쩌란 말인가!

최명주 여천고등학교 교사
최명주 여천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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