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는 너무 많은 미움들이 있었다. 아내에 대한 미움, 직장 상사에 대한 미움, 자신에 대한 미움, 생활 속의 시시콜콜한 미움과 세상에 대한 막연한 미움까지 내 안에는 오래된 미움들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동안 나는 그 미움들을 정면으로 거부할 용기도, 스스로에 대한 솔직함도 없었기에 그 미움에 대해 반응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낙타가 제 새끼를 거부한 것은 너무도 솔직한 자기감정의 표현이요, 스스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낸 어쩌면 진솔한 삶의 모습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낙타의 눈물’은 너무도 값진 눈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스스로의 미움을 스스로 거둘 수 있는 솔직하고 순수한 감정, 그리고 그 용기 있는 삶의 태도가 깊은 감동으로 밀려왔다. 자비의 마음, 진정한 사랑의 마음은 이렇게 대상에 대한 미움의 감정을 깨끗이 지우고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미움의 감정을 말끔하게 지우지 못하고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어설픈 인간관계 때문에 입으로만 사랑한다며 살지는 않았을까. 위선적인 사랑에 스스로 도취되어 진정한 사랑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나는 갑자기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샤먼의 말을 빌리면 낙타는 원래 마음이 여린 동물이어서 상처를 쉽게 받기도 하지만 쉽게 회복하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낙타의 아름답고 순결한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불안한 영혼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마두금 연주와 샤먼의 온화한 손길이 자신의 마음에 이르는 순간, 그 모든 우주의 사랑을 그대로 온몸으로 받아낼 줄 아는 착한 심성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라면 샤먼의 온화한 손길을 접한다 해도 나의 미움을 버리고 사랑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을까. 내 위선의 껍질은 일상 속에서 이미 두꺼워질 대로 두꺼워져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지는 않았을까.
이것은 어찌 보면 나 뿐 아니라 현대인들의 왜곡된 일반적 감성일지도 모르겠다. 감정마저도 잘 포장되어야 하는 시대이니 우리에게 이 ‘낙타의 눈물’을 담은 눈물샘이 다 마르지나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동안 삶의 중심에 놓았던 ‘이성’과 그와 동류항 격인 ‘과학기술’과 또 그로부터 온 부(富)와 편리함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면서부터 속살처럼 예민하고 순수한, 아름다운 ‘낙타의 눈물’을 꾸준히 잃어왔는지도 모른다. 다만 돌아 갈 길마저도 잃어버리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