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두규 시인
언젠가 몽골의 고비사막에 대한 다큐를 보았는데 낙타가 새끼를 낳고 있었다. 바람 부는 잿빛 사막의 모래 위에서 어미는 처절한 사투를 벌이며 새끼를 낳고 있었다. 막 땅에 떨어진 새끼는 꿈틀거리다가 비척비척 일어서더니 가까스로 걷게 되자 바로 어미의 젖부터 찾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미는 제 새끼가 젖을 물려고 하자 한사코 새끼를 떠밀며 젖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낙타 주인이 보다 못해 억지로 어미를 붙들고 새끼에게 젖을 물리려 하자 어미는 그 어린 갓 태어난 새끼를 발로 툭 차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3일 동안 새끼는 어미로부터 거부당하고 젖을 먹을 수 없자 주인은 인근의 샤먼을 찾아가 사실을 말하고 어미 낙타가 새끼에게 젖을 물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한다. 늙은 샤먼은 자신의 젊은 아들에게 마두금을 연주하게 하고 자신은 어미 낙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한참 정성을 들이니 얼마 후 정말 놀랄만한 일이 일어났다. 어미 낙타가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어린 새끼에게 젖을 내주는 것이었다. 잃었던 모성애를 되찾은 것이었다. 물론 모든 낙타가 그러는 것은 아니며 이런 경우는 가끔 있는 일이라고 했다.  그 샤먼은 말한다. 어미 낙타가 새끼를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미움 때문이었다고. 출산을 통해 어미가 겪은 엄청난 고통과 죽음과도 같은 두려움 때문에 생긴 새끼에 대한 미움 때문이었다고. 나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모성의 본능조차 잊을 정도로 자식이 미웠을까. 그럴 수도 있을까. 한참을 생각하며 내 안의 미움을 들여다보는 동안 나는 그 의문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내 안에는 너무 많은 미움들이 있었다. 아내에 대한 미움, 직장 상사에 대한 미움, 자신에 대한 미움, 생활 속의 시시콜콜한 미움과 세상에 대한 막연한 미움까지 내 안에는 오래된 미움들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동안 나는 그 미움들을 정면으로 거부할 용기도, 스스로에 대한 솔직함도 없었기에 그 미움에 대해 반응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낙타가 제 새끼를 거부한 것은 너무도 솔직한 자기감정의 표현이요, 스스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낸 어쩌면 진솔한 삶의 모습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낙타의 눈물’은 너무도 값진 눈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스스로의 미움을 스스로 거둘 수 있는 솔직하고 순수한 감정, 그리고 그 용기 있는 삶의 태도가 깊은 감동으로 밀려왔다. 자비의 마음, 진정한 사랑의 마음은 이렇게 대상에 대한 미움의 감정을 깨끗이 지우고서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미움의 감정을 말끔하게 지우지 못하고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어설픈 인간관계 때문에 입으로만 사랑한다며 살지는 않았을까. 위선적인 사랑에 스스로 도취되어 진정한 사랑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나는 갑자기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샤먼의 말을 빌리면 낙타는 원래 마음이 여린 동물이어서 상처를 쉽게 받기도 하지만 쉽게 회복하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낙타의 아름답고 순결한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불안한 영혼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마두금 연주와 샤먼의 온화한 손길이 자신의 마음에 이르는 순간, 그 모든 우주의 사랑을 그대로 온몸으로 받아낼 줄 아는 착한 심성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라면 샤먼의 온화한 손길을 접한다 해도 나의 미움을 버리고 사랑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을까. 내 위선의 껍질은 일상 속에서 이미 두꺼워질 대로 두꺼워져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지는 않았을까.

이것은 어찌 보면 나 뿐 아니라 현대인들의 왜곡된 일반적 감성일지도 모르겠다. 감정마저도 잘 포장되어야 하는 시대이니 우리에게 이 ‘낙타의 눈물’을 담은 눈물샘이 다 마르지나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동안 삶의 중심에 놓았던 ‘이성’과 그와 동류항 격인 ‘과학기술’과 또 그로부터 온 부(富)와 편리함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면서부터 속살처럼 예민하고 순수한, 아름다운 ‘낙타의 눈물’을 꾸준히 잃어왔는지도 모른다. 다만 돌아 갈 길마저도 잃어버리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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