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암한문서예학원 서예가 김승환 훈장

▲ 장암 김승환 훈장의 작품
연향동 대우아파트 상가건물에 위치한 장암한문서예학원을 찾아갔다. 자유학기제 관련 진로교육에 도움이 될 만한 분으로 장암 김승환 훈장을 추천 받고 찾아간 것이다. 그는 진로교육의 취지를 들으며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후학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해야지요.”

사지육신 멀쩡하고, 넘치는 풍요 속에 살면서도 더 많이 갖기 위해 혈안인 세상에서 얼마나 반가운 목소리였는지 순간적으로 기분이 확 좋아져서 곧장 찾아뵈었다.

돈을 잘 버는가 못 버는가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세상인지라 인터뷰 시작에 앞서 “나 같은 직업은 밥 못 먹고 사는데?” 하며 소탈하게 웃으신다.
 

 장애라는 굴레
키가 140센티도 안 되는 작은 체구로 등이 굽어 있는 불편을 겪고 살아도 지금 이대로 참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타고난 장애인은 아니었다.

일곱 살에 동네 또래들과 놀다 척추를 다치게 되어 누워 지냈고, 며칠이면 나을 거라 믿었건만 1년이 지나도 걷지 못하게 되자 동네 의원을 찾았다. 동네 의원에서 도시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해야 살 수 있다는 권유에도 지지리도 가난한 형편이라 큰 병원으로 가지 못하고 읍내 의원에서 수술을 했다. 그 수술로 인해 평생 장애라는 굴레를 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천재소리를 들을 정도로 머리가 좋았던 그였지만, 장애인으로 청소년기를 넘기기는 무척 힘들었다. 모든 것을 염세적 시각으로 보았다. 의지하고 위로 받을 곳이 없던 그는 학교도 가다 말다가를 반복하며 일찍부터 술과 담배에 의존하며 홀로 바다가 보이는 뒷동산에 올라가 섬들을 지나다니는 여객선에서 들려오는 유행가 소리를 듣고 유채꽃을 보며 사색하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 한다.

그런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약한 몸으로 충분한 영양섭취도 이루어지지 않아 또 한 차례의 ‘하반신 마비’라는 넘기 힘든 고비를 맞게 된다. 그것은 3년여 동안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만큼 무서운 신형이었다. 가족의 고생은 물론이고 그 자신도 하반신 마비인 채 극약마저도  취할 수 없어서 죽을 수 조차 없었다는 얘기는 가슴 저리도록 슬프다.

그러나 누워서만 지내는 시간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방 안에 누워서 큰 집 형님이 읽었던 책과 동네에 있던 책을 빌려 보던 가운데 접한 고전은 평생을 이끌어준 동기가 되었다. 그 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이를 악물고 재기의 운동을 시작했다. 조금씩 몸을 움직이게 돼 일어서고 걷게 되어 몸을 이길만해져서 인천으로 올라갔다.
 

운명같은 만남

운명처럼 동곡 김제화 선생을 만나 한학과 서예를 접하고, 그는 순간 눈을 번쩍 뜨는 기쁨을 맛 보았다고 한다. ‘내가 할 일이 이거구나’ 싶은 마음에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서른 살이 넘어서면서 주위사람들은 과거시험을 볼 것도 아니고 돈 되는 공부도 아니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 시절 자의반 타의반으로 역학(명리학)을 공부하여 사주팔자로 타인의 명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으나 생계로 삼기에는 그의 성격상 맞지 않았다. 의뢰인에게 달콤한 얘기와 돈이 되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역학은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처럼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분에 넘치는 욕심으로 심신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에게 안분지족을 일깨우는 철학으로, 자신의 몫을 알아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가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공부라고 설명 한다

99년부터 용당동에 학원을 열고 한문과 서예를 가르치다가 지금은 국어 학원을 하고 있는 아내와 함께 학원을 운영하기 위해 연향동 대우상가로 이사를 왔다. 한 때 100명이 넘던 학생 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며 영어 몰입교육 바람에 겨우 밥벌이를 하고 있는 수준이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12년 전부터는 자신의 서예 실력을 완성시켜야겠다 싶어서 광주, 학정 이돈흥 선생을 찾아가 배움을 간청 하고 12년째 한 달에 두 세 차례 공부를 다니고 있다. 한국미술대전 서예부문 입선 다수와 전남미술대전 서예 연특선 4회로 추천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결실도 맺었다.
 

 

삶의 길을 가르친 고전

지금은 순천지방법원에도 출강 하고 있다. 한문과 서예를 가르치다 보면 성인(聖人)들이 2500여년 전 했던 그 말들이 왜 아직도 지침이 되는지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동양학은 특히 앞만 보고 달려가지 않고 뒤를 돌아볼 수 있게 하여 삶의 이치를 알게 한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모습은 첨단의 문명인처럼 느껴지지만 옛 사람들이 스스로 자족하며 살아 온 정신세계에 비하면 요즘 세대는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고전을 읽고, 느끼고, 확인하면서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이 그가 학문을 하는 목적이고 만족이다. 가끔은 내가 “학문을 잘 하고 있는지?” “서예의 길을 잘 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는 날도 있지만 자신이라도 가고 있다는 위안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고 한다. 장애를 입지 않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더 좋았을 터이지만 한학을 공부하고 서예가의 길을 걸어올 수 있도록 이어진 인생을 돌아보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한학과 서예는 가르치고 배우면서 성장 해 온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길이었다. 건강을 잃고 꼼짝없이 누워서 지내야 했던 10대 후반, 방 안에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읽었던 책이지만 고전은 그에게 삶의 길을 가르친 친구였고, 어떤 사물을 접할 때 근거를 알 수 있게 해 준 스승이었다. 한학을 공부하는 그 순간 이치에 맞는 삶은 어떤 걸까 들여다보며 그 순간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었다는 그는 학생들에게 그 배움의 과정을 전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휴먼라이브러리는 2000년에 덴마크의 평범한 청년들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로,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을 빌리듯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빌려’서 만나는 것입니다. 기획취재2팀은 순천에서 휴먼라이브러리 프로젝트가 이루어질 수 있는‘밑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만나봤으면 하는 사람들을 기사를 통해 소개하고, 그 사람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려고 합니다..

취재: 휴먼라이브러리팀
글: 박경숙

제 41호- 2014.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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